일본 언어학자가 쓴 신간 '세상은 라틴어로 가득하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고대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는 죽은 언어(死語)일까, 아니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언어일까.
일본의 언어학자인 라티나 사마는 최근 출간한 자신의 저서 '세상은 라틴어로 가득하다'(서해문집)에서 라틴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말한다.
저자는 각종 지명과 정치·종교 용어, 과학 용어, 패션 브랜드, IT 용어 등에서 사용되는 라틴어를 상세히 소개한다.
우선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로마는 유럽 각국에 라틴어로 된 지명을 남겼다. 영국의 '맨체스터'(manchester)와 '우스터'(worcester)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의 어원은 라틴어 'castrum'(성채)에서 파생된 'cester'로, 해당 지역에 로마군이 쌓은 성과 요새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독일의 쾰른은 더욱 적나라하게 라틴어의 흔적이 남은 도시 이름이다. 바로 식민지를 뜻하는 라틴어 'colonia'(콜로니아)에서 유래했다. 저자는 쾰른에서 처음 제조된 세계적인 향수 브랜드 '오드콜로뉴'(eau de Cologne)에서 '콜로뉴'는 프랑스어로 '쾰른'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한다.
라틴어는 정치와 종교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vote'(투표)는 라틴어 'votum'(부탁, 맹세)에서, 'government'(정부)는 '배를 조종하는 조타수'라는 의미의 라틴어 'gubernare'에서 유래했다. 종교에서는 '진혼곡'을 뜻하는 '레퀴엠'(Requiem)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안식을'이란 뜻의 라틴어 단어로, 본래는 미사 첫 구절에 흔히 쓰이는 관용적 단어에 불과했지만, 상징성과 운율로 인해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과학 분야에서 라틴어는 더욱 위세를 떨친다. 행성 이름인 '마르스'(Mars, 화성), '비너스'(Venus, 금성), '머큐리'(Mercury, 수성)는 로마 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태양(sol)과 달(luna), 지구(Terra)도 모두 라틴어를 어원으로 한다. 이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의 이름과 동식물 학명, 인체 기관과 영양물질, 질병과 약, 세균 등에 이르기까지 라틴어에서 유래한 개념과 이름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대중문화와 상표명, 거리의 간판과 기업 브랜드에 스며든 라틴어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아우디'(Audi)와 볼보(Volvo)는 각각 라틴어로 '들어라', '나는 굴린다'는 뜻이고, 아식스(ASICS)는 라틴어 문장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Anima Sana In Corpore Sano)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브랜드명이다. 저자는 이외에도 디지털, 데이터, 컴퓨터, 유비쿼터스, 팩시밀리, 알리바이, 어젠다, 프로파간다, 프로보노, 보너스, 메세나, 에고이스트, 큐레이터, 프롤레타리아, 버스 등도 모두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나 문구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라틴어라는 창을 통해 세계사와 문명의 흐름도 살펴본다. 저자는 라틴어와 인류가 동행한 2천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세계사를 둘러싼 라틴어의 이모저모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이현욱 옮김.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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