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U, 작년 한국 민주주의 10계단↓…'결함있는 민주제'로 강등
미국·프랑스도 '결함있는 민주제' 국가에 포함돼
EIU "정치적 양극화, 사회 불안 위험 증가시켜"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영국의 한 경제분석기관이 발표한 지난해 세계 민주주의 순위에서 한국의 순위가 급락하자 그 이유를 둘러싸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쪽에선 비상계엄 여파로 인해 민주주의 평가 점수가 떨어지게 됐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편에선 야당의 무리한 탄핵 남발로 인한 정국 혼란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대외 평가가 낮아진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 분석기관의 보고서를 살펴봤다.
◇ 한국, EIU '민주주의 지수' 평가서 10계단 하락
논란의 보고서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다.
이 보고서는 지난 2월 말 발간된 것이기 때문에,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EIU는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선거 과정과 다원주의 ▲정부 기능 ▲정치 참여 ▲정치 문화 ▲시민의 자유 부문에서 점수를 매기고 평균을 총점으로 산출한다.
총점이 10점 만점에 8점을 초과하면 '완전한 민주제', 6점 초과∼8점 이하면 '결함 있는 민주제', 4점 초과∼6점 이하면 '혼합 체제', 3점 이하면 '권위주의 체제'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총점이 7.75점으로, 전년보다 0.34점 내리며 순위가 22위에서 32위로 떨어졌다. 총점 하락 폭이 167개국 중 9번째로 컸다.
민주주의 등급도 '완전한 민주제'에서 '결함 있는 민주제'로 강등됐다.
'완전한 민주제'는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며 정부의 기능이 만족스럽고, 언론은 독립적이고 다양하다.
'결함 있는 민주제'는 기본적인 시민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통치 문제, 낙후한 정치 문화, 저조한 정치 참여 등 결점이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완전한 민주제' 그룹엔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25개국이 포함됐고, '결함 있는 민주제'엔 우리나라를 비롯해 프랑스, 미국, 칠레 등 46개국이 분류됐다.
<표> EIU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의 득점 추이
※ 연도별 EIU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발췌
◇ EIU "정치적 양극화, 사회 불안 위험 증가시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점수가 크게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보고서는 "한국은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의 정치적 교착상태로 정부 기능과 정치 문화 부문의 점수가 하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 기능' 부문의 점수가 전년 대비로 1.07점(8.57점→7.50점), '정치 문화' 부문이 0.62점(6.25점→5.63점) 하락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국회와 대중이 민주주의 제도에 광범위한 존중을 보여줬지만, 이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비교적 짧은 역사와 상대적인 취약성을 일깨워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당 간의 뿌리 깊은 반목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정치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적 폭력과 사회 불안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계엄 시도로 인한 후유증은 2025년에도 의회 내에서 국민 사이에서 양극화와 긴장 고조라는 형태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런 언급들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순위가 급락한 데엔 비상계엄 여파가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점수가 많이 내린 '정부 기능' 부문의 구성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부는 군대나 안보 기관의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나' 등의 14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아울러 보고서가 지적한 '정치적 교착상태', '정당 간의 뿌리 깊은 반목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여야 모두에 해당한다고 봐야 타당할 것이다.
◇ EIU '민주주의 지수' 평가서 역대 최저점, 최저 순위
우리나라가 이번에 얻은 점수와 순위는 EIU의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역대 최저점이자 최저 순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발표 첫해인 2006년에 7.88점을 받아 31위였다. 지난해 점수 7.75점은 종전 최저점인 2006년보다 0.13점, 순위는 32위로 한 계단 낮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점수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8점대를 유지하며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가 2015년에 7.97점, 2016년에 7.92점으로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강등됐다.
이후 2020년 8.01점으로 다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올라선 뒤 2023년까지 유지했다.
2021년엔 8.16점으로 역대 최고점, 16위로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부문별 점수를 2021년과 비교하면 '정치 문화' 부문의 점수가 7.50점에서 5.63점으로 1.87점이나 하락했다.
'정치 문화'는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와 결속력이 있는가' 등의 항목으로 구성됐다.
이와 달리 '시민의 자유'는 같은 기간 7.94점에서 8.82점으로 0.88점 올랐다.
[표] EIU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의 점수와 순위
* EIU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발췌
◇ 스웨덴 연구소 평가선 '선거 민주주의' 국가로 강등
다른 연구기관의 보고서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최근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선거 민주주의'로 강등됐다.
보고서는 세계 179개국을 대상으로 선거제, 민주주의, 자유 등 여러 부문을 평가, 이를 0∼1점으로 점수화한 뒤 이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 선거 권위주의', '폐쇄적 권위주의' 국가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돼 오다가 32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선거 민주주의' 국가로 떨어졌다.
'선거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롭게 공정한 다당제 선거, 만족할 수준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갖춘 국가를 말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이런 요건과 함께 행정부에 대한 사법부와 입법부의 견제, 시민적 자유의 보호, 법 앞에의 평등 등이 갖춰져야 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엔 미국, 일본, 호주 등 29개국이, '선거 민주주의' 국가엔 우리나라를 비롯한 59개국이 포함됐다.
실제 주요 지표인 자유 민주주의 지수(LDI)는 2022년 0.73에서 2023년 0.60으로 떨어졌다.
<표>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평가
※ 연도별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자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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