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비관세 장벽 협의는 가능…이제는 美가 입장 명확히 할 때"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미국과 첫 관세협상에서 자동차 상호 무관세와 중국산 철강 과잉 공급 등을 집중 논의했다고 15일(현지시간) 밝혔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은 전날 미국 워싱턴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관세 협상을 개시했다.
올로프 길 EU 무역담당 대변인은 연합뉴스에 보낸 입장문에서 "관세와 비관세 장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며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공산품에 대한 상호 무관세를 적용하자는 EU 측 제안이 집중 논의됐다고 밝혔다.
EU는 특히 자동차·공산품 외에 상호 무관세 적용 범위를 더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알루미늄 산업의 글로벌 공급과잉 문제, 반도체·의약품 산업의 공급망 회복력 현안 역시 회의의 주된 초점이었다고 길 대변인은 전했다.
이 가운데 '철강·알루미늄 글로벌 공급 과잉'은 미국과 EU 모두 공통으로 우려를 제기하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과 미국 측 카운터파트 간 첫 회의는 수 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이후 미 재무부와 고위급 회의도 별도로 열렸다. 또 EU 측은 상호 이익이 되는 협상의 범위를 추가 모색하기 위해 실무급 협의도 제안했다.
공식 협상 개시와 함께 신경전도 감지된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회의가 끝난 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상호 무관세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에 관해 협력할 의향이 있다고 재확인하면서도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의 상당한 공통된 노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길 대변인도 협상 시한이 90일임을 상기하면서 "EU는 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제는 미국이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협상이 그렇듯, 쌍방향 소통과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양측 모두가 무언가를 협상 테이블에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U뿐 아니라 미국 측의 양보도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 협상 과정에서는 '비관세 장벽' 완화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길 대변인은 이날 오후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다른 부문의 비관세 장벽 완화는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식품, 보건, 안전 기준은 타협 불가능한 선(red line)"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이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며 기술 및 디지털 시장에 적용되는 규정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USTR은 지난달 31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EU의 농식품 안전 규제와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무역 장벽'으로 명시한 바 있다.
집행위는 지난 14일 발표된 미국 정부의 반도체·의약품 산업에 관한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영향 조사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길 대변인은 "예상된 수순으로, 조사는 몇 개월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며 "집행위는 대서양 관계에 중요한 반도체·의약품 부문 관세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고 말했다.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는 반도체와 의약품 수입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관세 등을 통해 제한할 필요가 있는지 결정하는 법적 근거다. 두 부문에 대한 관세 부과 결정 시 EU 역시 추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EU는 미국의 철강 관세에 대한 대응으로 이날부터 첫 미국산 상품에 대해 보복조치를 하려다가 지난주 미국의 상호관세 90일 유예 결정에 호응, 오는 7월 14일까지 조치 발동을 보류했다.
협상 불발 시 철강관세 보복조치를 다시 발동하는 한편 미국 측의 자동차·상호관세 등에 대한 추가 보복조치도 한다는 계획이다.
길 대변인도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추가 대응책 마련을 위한 준비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며 "모든 수단이 고려 대상"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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