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유전자로 클래식 강국 발돋움…다음 세대에 유산 전달이 책무"
50주년 기념 음반 발매…내달엔 예술의전당서 '마라톤 콘서트'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소크라테스가 그리스의 철학자가 아니라 인류의 철학자인 것처럼 클래식도 이제는 서양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입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양성원(58) 연세대 음대 교수가 15일 첼로 연주 50주년을 맞아 영국의 낭만주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과 '피아노 오중주'를 담아 기념 음반을 발매했다.
앨범 발매를 계기로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양 교수는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이유는 클래식이 바로 우리의 음악이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조성진, 임윤찬, 클라라 주미 강 등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인정받고 있다"며 "그만큼 클래식이라는 세상이 우리에게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나아가 클래식에 한해서는 한국 연주자들이 동양인이 지닌 한계를 이미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이 클래식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악의 힘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한국인은 뛰어난 음악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국악의 유전자"라며 "국악보다 더 음악적인 음악은 없다. 우리의 피에 흐르는 국악의 유전자로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클래식 시장을 점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래식 연주자로 50년을 보낸 양 교수는 남은 음악 인생을 후배들에게 클래식의 진정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클래식 연주자로서의 삶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인류의 유산을 제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받은 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저의 책무"라고 말했다. 이어 "남은 음악 인생은 다음 세대들이 훨씬 더 따뜻함을 느끼며 이 직업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음악 인생 50년을 되돌아본 양 교수는 자신의 겪었던 좌절과 극복의 이야기를 꺼내 들며 후배들에게 부침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양 교수는 "사춘기 시절 프랑스 국립고등음악학교를 다니면서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다 첼로를 잠시 접은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결국 평생 기억에 남는 첼로 공연이 다시 첼로 케이스를 다시 열게 했다"고 회상했다.
양 교수는 특히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음악의 꿈을 접는 후배들에게 인간만이 만들어내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따로 있다고 격려했다. 그는 "AI는 놀라움을 줄 수는 있지만 감동을 줄 수는 없다"면서 "AI로 인해 더 많은 정보가 더 빨리 퍼지는 세상에서 클래식 음악은 이른바 '슬로우 음악'으로서 더욱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스승 야노스 슈타커에 대한 회고도 빼놓지 않았다. 양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 음대 재학시절 '첼로 거장'으로 불리는 슈타커의 지도를 받은 바 있다. 그는 "1975년 3월 슈타커가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한 연주를 듣고 피아노에서 첼로로 전향하게 됐다"면서 "인디애나 음대에서 슈타커의 제자가 된 날은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다. 스승님은 저에게 평생의 아이돌"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다음 달 27일에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수원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엘가의 '첼로 협주곡',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양 교수는 "차라리 마라톤을 뛰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협주곡 세 곡을 연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그래서 이번 콘서트를 아예 '마라톤 콘서트'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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