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브로커와 공생하는 검사 역…"작품 무게 추 잡아주는 역할"
"작년 청주 연극, 인터미션 같아…기회 되면 무대 설 것"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고위직 캐릭터는 시켜줄 때 빨리빨리 해야 해요. 뭘 고민하고 있겠어요, 하하."
1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야당' 주연 배우 유해진은 황병국 감독으로부터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야당'은 마약 범죄 관련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주는 브로커인 야당과 그와 공생하는 검사, 마약 밀매 조직 소탕에 모든 것을 건 경찰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그린다.
유해진은 누명을 쓰고 옥살이하던 이강수(강하늘 분)를 야당으로 만들어주고, 그를 이용해 검거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검사 구관희 역을 소화했다. 출세욕에 눈이 멀어 유력 대선 후보 아들의 범죄를 덮어준 이후 강수와 마약 팀 형사 오상재(박해준)의 타깃이 되는 인물이다.
유해진은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검사 캐릭터의 틀을 깨려 했다고 강조했다. 권력을 향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후반부에선 잡범이나 다를 바 없는 찌질한 모습도 보여준다.
"야망을 좇아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야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 같았어요. 어떤 직업이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가능하면 인물을 전형적으로 그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작품에 참여하든 그게 목표에요. (전작인) '올빼미'에서 인조를 연기했을 때처럼요."
그는 "우리 영화에는 시끄러운 캐릭터가 너무 많았다"면서 "영화의 무게 추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려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나 그는 배우 경력이 쌓이며 모든 캐릭터를 색다른 모습으로 소화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최근 본 '야당' 예고편에서 구관희가 이강수에게 "너 야당 한 번 해봐라"라고 권하는 장면은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중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라고 협박하는 장면이 떠오르게 했다고 한다.
유해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걸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숙제"라면서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모습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야당'에는 몇 년 동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마약 문제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의 대립, 대통령 선거 등이 나와 실제 우리나라 상황과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 특히 "대한민국 검사는 대통령을 만들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구관희의 대사는 시사회 이후 줄곧 화제가 됐다.
유해진은 "근래에 찍은 영화가 아닌데 지금 상황과 묘하게 (닮게) 됐다"며 웃었다.
'야당' 출연을 결심한 데에는 소재와 스토리가 신선한 덕도 있지만 황 감독과의 인연도 작용했다고 그는 말했다.
황 감독은 유해진이 막 얼굴을 알리던 시절 조연으로 출연한 '무사'(2001)에서 연출부를 맡았고 연출 데뷔작인 '나의 결혼원정기'(2005)에선 정재영 대신 유해진을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했다.
유해진은 과거 황 감독에게 '주유소 습격사건'(1999)에서 깡패 역으로 등장한 이후 비슷한 역할 제안만 들어온다는 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황 감독은 이를 기억했다가 '야당'에서 검사 역을 유해진에게 제의했다.
"한동안 '양아치' 역할만 들어와서 '내가 이러려고 연극 무대를 떠나 영화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이었어요. 어느 날 연극 단원들하고 술을 마시는데 마침 텔레비전에 제가 출연한 영화가 나오더라고요. 한 선배가 '너 저런 거나 하려고 나갔냐?'고 화도 내셨지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역할을 안 했다면 지금까지 (영화를) 못했을 것 같기도 해요."
유해진은 지난해 9월 고향이자 배우 생활을 시작한 청주의 청년극장에서 개관 40주년 연극 '열개의 인디언 인형' 무대에 섰다.
그는 "그 연극이 제게는 '인터미션' 같았다"며 "명절에 온 식구를 만나도 불편한 법인데 그땐 스트레스나 불편한 점이 조금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서울 (극단·제작사)에서도 연극 출연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근데 겁이 나서 못 하겠더라고요. 무대를 떠난 지 너무 오래됐으니까요. 하지만 청주 무대를 계기로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이렇게 시작했으니까 앞으로 좋은 기회만 온다면 그게 어디라고 해도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