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러 전승절 열병식 참석 공식화 속 김정은 방러 가능성
전문가들 "전례 없는 이벤트"…성사 여부에는 의견 갈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러시아가 내달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여러 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을 초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정상의 '모스크바 회동'이 성사될지에 관심이 모인다.
일부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시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열병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북·중·러 3개국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미국 등 서방에 맞서 강력한 저항의 신호를 보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을 경계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 함께 열병식에 서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김 위원장도 장거리 이동 등 불편을 감수하고 다자외교 무대에 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타스·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 러시아를 방문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과 면담하면서 시 주석이 5월 9일 전승절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 주석은 우리의 주요 손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 주임도 러시아 방문의 주요 임무가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과 전승절 행사 참석 준비라고 확인하면서 "이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방문 준비에 대한 입장을 철저히 교환했다. 준비가 꽤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수개월 안에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방문 시기가 전승절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달 27일 구체적 시기는 언급하지 않은 채 김 위원장의 올해 러시아 방문이 준비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북한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모스크바 방문 초대를 받았다.
루덴코 차관은 앞서 지난달 15일 북한을 방문해 최선희 북한 외무상 등과 만나 '최고위급 접촉'을 논의했다. 같은 달 21일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북한을 찾았다.
김 위원장의 전승절 열병식 참석 가능성에 대해 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어떤 성명도 발표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열병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 제재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러시아 입장에서 이만한 '외교 이벤트'가 없고, 김 위원장으로서도 세계 지도자들과 나란히 설 기회라는 것이다.
만약 김 위원장이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할 경우 북한과 중국, 러시아 지도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서게 된다고 SCMP는 전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만난 적이 있지만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은 없으며, 다자 외교 무대에 선 적도 없다.
아르티옴 루킨 러시아 극동연방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다면 전례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SCMP에 말했다. 그는 또한 전승절 때 최소 12개국 정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푸틴에게 또 다른 "외교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성현 조지 부시 미중 관계재단 선임연구원은 5월 모스크바 열병식에서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같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번 행사로 김 위원장은 세계 지도자들 사이에 선 자기 모습을 북한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며 "유일한 유의점은 김 위원장이 계속 자신이 주목받을 수 있는 양자 정상회담을 선호하고 다자 회담에 참석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근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 동석을 피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과 지속적인 핵 도발, 김 위원장이 지난해 통일 정책을 폐기하고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일 등으로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긴장됐다며 시 주석이 실리보다는 정치적 상징에 가까운 열병식에 김 위원장과 같이 참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 교수는 또 러시아 역시 미국과의 관계가 아직 취약하고 민감하다는 점에서 "푸틴이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을 원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중국은 러시아·북한과 같은 프레임으로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같이 열병식에 참여할 경우 중국이 "꽤 어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SCMP에 말했다.
평양과 모스크바 간 물리적 거리도 김 위원장의 열병식 참석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두 도시를 잇는 직항 항공편은 없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이전 러시아·중국 방문 때처럼 전용 방탄 열차를 타고 이동할 경우 상당 기간을 모스크바 방문에 할애해야 한다.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