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중시 지한파' 아미티지 전 美국무부 부장관 별세(종합)

연합뉴스 2025-04-15 12:00:16

DJ정부 '햇볕정책'에 우려…부시, 北 '악의축' 규정 속 온건 목소리도

'대북 협상·봉쇄' 전략…'아미티지·나이 보고서'로 미일동맹 방향 제시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

(도쿄·서울=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서혜림 기자 = 조지 W.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내며 한반도 정책에 깊이 관여한 리처드 아미티지 전 부장관이 13일(현지시간)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고인이 설립한 컨설팅 기업 '아미티지 인터내셔널'은 이날 성명을 통해 "무거운 마음으로 아미티지 전 부장관의 별세 소식을 전한다"며 "사인은 폐색전증"이라고 밝혔다.

1945년 4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7년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했다.

특히 국무부 부장관으로 재임한 2001년∼2004년, 한국 김대중 정부와 공조하며 대북 문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당시 김대중(DJ) 정부가 표방하는 '햇볕 정책'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1월 부장관 내정자로서 워싱턴에서 한국 측 인사들을 만나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대중 정부가 지금까지 남북 관계에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어 (햇볕정책이) 실패했을 때의 부담이 크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다만 북한에 대해 단호하지만 유연한 접근법을 추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부시 당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일 때 국무부 내에서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과 함께 온건한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중학생 2명이 사망한 '미선이·효순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반미 기류가 거세게 확산했을 당시엔 부시 대통령의 사과와 유감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밖에 이라크 전쟁에 따른 혼란 수습, 주일미군 재편 문제 등에 대응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는 컨설팅 회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공화당 내 안보 정책 중진으로 미국의 전략에 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특히 조지프 나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 등과 함께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차례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를 펴내며 미일 동맹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언을 내놨다.

2006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안보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한국에 이양하는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당시 전작권 환수를 적극 추진하던 노무현 당시 정부에 관련 조언을 했다. 그는 당시 한미동맹에 대해서도 "중간에 힘들 때도 있었고 파란만장했으며 가끔 마찰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며 "한미동맹이 최대한 지속되도록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의 주도로 공화당 대북정책 연구그룹이 1999년 발간한 일명 '아미티지 보고서'는 그간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의 '틀'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보고서는 북한과 협상을 추진하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봉쇄와 억제 강화, 선제공격 등 대안을 택할 수 있다고 제언하면서도 "이 중 어느 것도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를 후원한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그는 아시아 안보 정책 분야에서 존경받는 거장이었고, 용기 있는 정책 리더이자 진정한 애국자, 의리 있는 친구였다"며 고인의 별세를 추모했다.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