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병의 전설이 된 제주마 이야기…신간 '레클리스'

연합뉴스 2025-04-15 09:00:10

'레클리스' 표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던 1953년 3월, 한국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경기도 연천 네바다 전투. 탄약을 실은 말 한 마리가 '죽음의 고지'로 불리던 베가스, 리노, 카슨 고지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달렸다. 미 해병대 제1사단 소속의 군마 '레클리스'(Reckless)는 하루에만 51차례 고지를 오르내리며 무려 5톤의 탄약을 나르고, 부상병을 실어 날랐다.

최근 출간된 '레클리스'(도레미)는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해병대의 전설이 된 군마 '레클리스'의 전장 실화를 복원한 책이다. 미국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인 로빈 헌터가 8년에 걸친 취재와 자료 조사를 거쳐 책을 완성했다. 한국전쟁 참전 생존 해병들과 가족들의 증언, 군 문서, 사진 자료 등을 바탕으로 레클리스의 신화를 재구성했다.

제주마와 영국의 경주마 서러브레드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종인 레클리스의 본래 이름은 '아침해'라는 순우리말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군마가 필요했던 미 해병대 장교에게 250달러에 팔리면서 레클리스의 운명은 180도 뒤바뀐다. 통신선을 피해 걷는 법, 포격을 피하는 법, 벙커에 몸을 숨기는 법까지 전투 기술을 단 몇 번의 훈련으로 익히고, 곧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한국전쟁 전장의 제주마 '레클리스'

레클리스는 포탄이 터지는 전장에서 무려 88kg에 달하는 탄약을 실은 채 매일 56㎞ 거리를 이동했다. 포성 속에서 물러서지 않고, 부상을 당하고도 임무를 멈추지 않은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원들에게 군마가 아닌 전우로 여겨졌다.

그 공로로 레클리스는 미국 해병대 역사상 최초로 하사 계급장을 받은 동물이 됐고, 이후 상사까지 진급한다. 또 퍼플하트 훈장을 비롯해 유엔 종군 훈장, 미국 국방부 종군장 등 10개 이상의 훈장을 받았고, 미국 라이프(LIFE)지가 선정한 '100대 영웅'에 조지 워싱턴, 링컨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미국 전역에서 스타로 떠오른다. 사람과 다름없는 지능과 감정, 전설적인 전투 활약상, 해병들과 나눈 진한 전우애, 벙커에서의 생활상까지 레클리스의 모든 이야기는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문·방송은 물론 영화계까지 앞다퉈 레클리스의 삶을 조명했고, 단숨에 국민적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됐다.

레클리스는 전역할 때까지 해병대 일원으로 살다가 1968년 19세의 나이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레클리스를 기리는 동상은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을 비롯해 캘리포니아, 켄터키, 플로리다 등지에 세워졌다. 국내에도 2016년 레클리스가 목숨을 걸고 오르내렸던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동상이 들어섰고, 지난해에는 어미의 고향 제주에도 동상이 세워졌다.

황하민 옮김. 326쪽.

한국전쟁 전장의 제주마 '레클리스'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