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난민르포] ⑻전쟁 피해 이집트로…난민등록 대기줄 수백명

연합뉴스 2025-04-15 08:00:07

150만명 중 62만명 난민 지위…난민캠프 따로 없이 카이로 등지 현지인과 거주

UNHCR·WFP·UNICEF 등 난민자립 지원…대기자 워낙 많아 1년 반만에 등록도

난민 등록 위해 대기 중인 수단 난민 신청자들

(카이로=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이집트 수도 카이로 중심부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약 1시간(40km)을 달리면 수단 난민 다수가 모여 사는 '10월 6일시(市)'가 나온다. 10월 6일 도시는 1973년 이스라엘을 상대로 벌인 욤키푸르 전쟁을 기념해 붙여졌다.

이곳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 이집트사무소가 운영하는 난민 등록 관련 시설 2곳이 약 3km 거리에 있다.

난민 신청을 위해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하는 난민등록센터 '메인 빌딩'과 이후 난민 지위 결정을 받기 위해 인터뷰 등 구체적인 심사를 받아야 하는 'RSD(Refugee Status Determination) 오피스'다.

기자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난민등록센터 근무 시작 30분 전인 오전 7시 30분에 도착했을 때 정문 앞은 이미 수단 국적자 등 수백명의 난민 신청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쟁의 위협을 피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인근 국가인 이집트로 떠나온 수단 난민들이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는 곳이다.

난민 신청자들은 난민 등록 신청을 위한 약속을 잡기 위해 최소 2번 메인 빌딩을 방문해야 한다. 이후 6개월쯤 지나 정해지는 인터뷰 날에 RSD 오피스에 들러야 한다.

메인 빌딩 방문 인원만 하루 평균 600명에서 1천명 수준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 이집트사무소가 운영하는 난민등록센터

2023년 4월 수단 군부 갈등으로 내전이 발발하자 수단인들은 인근 국가로 피란했다. UNHCR 최신 통계상 이집트(150만명), 남수단(110만명), 차드(77만명) 등 순이다.

이집트 정부를 대신해 난민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UNHCR은 지난 7일 기준 91만명의 난민 등록 신청을 받았고, 62만명을 정식으로 등록했다.

대부분은 카이로에서 2천km 떨어진 수단 수도 하르툼(83%) 출신이다. 전체의 절반 이상이 여성(55%)이며, 아동의 비율은 42%나 된다.

이집트는 정부 정책상 다른 나라와 달리 난민캠프나 정착촌 조성 등이 금지돼 있다. 수단 난민들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아스완 등 도시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UNHCR은 원래 '10월 6일시' 이외에 카이로 중심가인 나일강 인근 자말렉에 난민등록센터를 한 곳 더 운영했다.

이집트 유엔난민기구(UNHCR) 난민등록센터서 차례 기다리는 수단 난민 모녀

그러나 시리아 등 기존 중동 난민에 더해 2023년 4월 수단 내전 사태 이후 난민이 대거 이집트로 유입됐다. 매일 등록 대기 줄이 넘쳐나 인근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했다.

이에 UNHCR은 도심 내 교통 체증과 혼잡 상황 등을 고려해 자말렉 난민등록센터는 폐쇄했다. 대신 카이로 외곽에서 한 곳만 운영하고 있다.

난민등록센터에서 만난 수단 난민 마샤어 세이겔딘(49) 씨와 막내딸 로아 살라(19) 양은 노란색 대기 번호표를 내보이면서 "전쟁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세이겔딘 씨는 "군인들이 집안에 들어와 나가라고 협박하고 무기를 내놓으라고 하는 등 일상생활이 살얼음판이었다"며 "이집트는 수단과 가장 가깝고,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전쟁통에 먼저 세상을 떠나 아이들을 내가 지켜야 했다"며 "혼자 7남매를 데리고 1년 반 전에 버스로 건너왔는데 등록 대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늘에서야 내 차례가 됐다"고 덧붙였다.

수단 수도 하르툼서 피란 온 난민 부부

알렉산드리아에서 거주하는 야세르 아흐메드(35) 씨 부부는 "수단 시절 집과 상점도 있고 재산도 넉넉했는데 하루아침에 운명이 바뀌었다"며 "난민 신청자임을 나타내는 '노란색 카드'를 받아야만 생계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집트 내 수단 커뮤니티 규정을 지키면서 다행히 안전하게 살고 있다"며 "수단 상황이 좋아지기만 한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UNHCR과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UNICEF) 등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수단 난민들을 위해 자립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난 함단 UNHCR 이집트사무소 대표는 "가장 취약한 난민 가정이 식량과 의료 서비스, 식수, 주거 등 필수 요소를 충족할 수 있게 현금을 지원한다"며 "정부 당국과 시민사회, 대중을 대상으로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활동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난민 아동의 교육 및 학습 환경 개선 차원에서 난민과 이집트 학생 모두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며 "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기회도 창출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집트 카이로서 현지인과 함께 거주하는 수단 난민 가족

특히 WFP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이집트에서 3년간 600만달러(약 85억원)를 투입해 난민 및 호스트 커뮤니티의 회복력 및 지속 가능한 생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WFP 계약 병원에서 2살 미만 자녀를 둔 수단 난민과 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영양 및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관련 교육을 지원하며, 청년을 대상으로 양질의 직업훈련 교육도 제공한다.

네 아이를 키우는 니헬 압델 라흐만 씨는 "WFP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받아 집 렌트비와 생활비, 식비 등에 사용함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UNICEF는 매달 약 9천명의 아동이 이집트에 도착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54%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비정부기구(NGO) 등과 협력해 아스완에 5개의 '아동 친화 공간'을 설립했다. 수단 난민 아동의 정신 건강 및 심리 사회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2023년 12월 교육을 위한 글로벌 기금을 조성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에 있는 2만여명의 수단 난민에게 첫 비상 대응 보조금 200만 달러를 전달하기도 했다.

WFP 계약 병원서 영양 및 건강검진 받는 수단 난민 아동

rapha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