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옥죌 때 아냐…EU, '간판 규제' 잇달아 연기

연합뉴스 2025-04-15 00:00:26

집행위 제안 한달여만에 신속 결정…규제 축소도 곧 착수

EU 깃발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미·중에 뒤처진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해 고심 중인 가운데 주요 기업 규제 시행을 잇달아 연기했다.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는 14일(현지시간)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과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시행 연기에 관한 이행법을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EU 관보에 게재되면 즉각 발효되며, EU 27개국은 연말까지 국내법에 변경된 시행 일정을 반영하게 된다.

CSRD는 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비(非)EU 기업을 포함한 모든 대기업, 상장 중소기업이 환경·사회적 영향 활동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서를 발행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지속가능성 공시'로도 불린다.

CSDDD는 대기업 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강제노동이나 삼림벌채 등 인권·환경 관련 부정적 영향을 예방·해소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부여하는 법이다.

두 법안 모두 1∼2년씩 시행이 연기돼 2028년부터 순차 적용될 예정이다.

이번 시행 연기 결정은 집행위가 지난 2월 26일 규제 간소화를 위한 골자로 한 첫 번째 옴니버스 패키지에 포함된 것으로, 약 한 달 반 만에 신속히 처리됐다.

이 패키지에는 두 법안의 적용 대상 범위를 대폭 축소·조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는데 일단 시행이 연기됨에 따라 조만간 법안 수정에 관한 논의도 본격화될 예정이다.

EU 상반기 의장국인 폴란드의 아담 슈왑카 EU담당 장관은 이번 연기 결정이 "관료주의 타파를 위한 중요한 첫 단계"라며 "우리 기업에 예측가능성을 제공하고 EU의 경쟁력을 더 높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애초 두 법안 모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1기 행정부(2019∼2024) 당시 간판 녹색산업 정책인 그린딜(Green Deal)의 핵심 성과로 꼽혔다.

그러나 작년 12월 출범한 폰데어라이엔 2기는 '경쟁력 강화'를 앞세워 기업의 행정 부담을 35% 이상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귀환에 맞서 EU 역시 달라진 현실에 맞춘 정책 조정이 필요하다는 프랑스, 독일 등 주요 회원국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도 작년 9월 집행위 의뢰로 발표한 'EU의 미래 경쟁력'에 관한 자문 보고서에서 CSRD와 CSDDD에 대해 "규제 부담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