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출범 뒤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공소중단 잇따라

연합뉴스 2025-04-14 17:00:05

WSJ "트럼프 정부, 화이트칼라 범죄단속 손 뗐다"

뇌물·돈세탁 사건 잇따라 접어…기소철회·대통령사면권으로 '면죄부' 주기도

미국의 팸 본디 법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해외 뇌물, 공직자 부패, 돈세탁, 암호화폐 등 일부 유형의 화이트칼라 범죄 단속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이 내린 수사 중단 지침들과 함께 수사가 중단되거나 처벌이 면제된 사례들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뇌물 사건 기소가 미국 기업들의 해외사업 경쟁력을 저하한다고 주장하면서, 1977년 제정된 '외국부패관행법'(FCPA) 적용을 47년 만에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법원에 계류 중이던 사건들과 진행 중인 수사들 수십건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미국 제도상 검찰총장을 겸하는 팸 본디 법무부 장관은 해외 마약조직과 범죄조직에 돈세탁과 제재 회피 사건 수사 역량을 집중하라고 검사들에게 지시했다.

WSJ는 이런 지침과 사건 처리에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기업 임원들을 기소하는 일은 이제 안 된다. 법무부는 피고인이 정치적 이유로 표적 수사 대상이 됐다거나 일부 소추 행위가 경제적 경쟁력이나 국가안보 이익에 불리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그리고 트럼프 세상과 정치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트럼프 2기 행정부 법 집행에 대한 WSJ의 촌평이다.

팸 본디 법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암호화폐 기반 온라인 예측시장 사이트 '폴리마켓'은 지난해부터 수사를 받아왔으나 정권교체 후 검사들에게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방위산업체이기도 한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설계 잘못으로 발생한 737 맥스 항공기 추락 사망사고 2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유죄를 인정하고 3년간 준법 감시를 받기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막판에 합의했으나, 정권교체 후 합의를 취소해 달라고 법무부에 요구했다.

'아다니 그룹' 총수인 인도 억만장자 고탐 아다니의 변호인들은 작년 11월 인도 정부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태양에너지 등 공공부문 계약을 따내려고 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최근 법무부 측에 공소 철회를 요구했다.

또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렌코어는 2022년 해외 뇌물과 시장 조작 혐의를 인정하고 1억4천만 달러(2천억원)의 비용을 지불해 준법 감시를 받아왔으나, 올해 들어 법무부 승인을 얻어 준법감시 의무를 벗어던지는 데 성공했다.

글렌코어는 준법감시 의무를 없애달라고 요구한 근거 중 하나로 미국에 핵심 자원인 코발트를 공급하는 업체라는 점을 부각했다.

법무부는 또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의 뇌물 사건에 대해 공소 철회를 지시했으며, 수사 담당 검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차례로 사표를 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윗선의 뜻'을 관철시켰다.

검찰에서 면죄부 받은 애덤스 뉴욕시장의 미소

트럼프 대통령은 사면권 행사를 통해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수소차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던 '니콜라' 창립자 트레버 밀턴과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멕스의 공동창립자 3명 등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받아 징역형과 거액의 벌금형을 면한 최근 예다.

이런 와중에 팸 본디 장관 등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인사들은 부패, 가격담합, 증권사기 등 수사에 경험이 많은 법무부 간부를 대거 내쫓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와 검찰뿐만 아니라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도 FCPA 위반한 외국 뇌물 사건 수사를 감독해온 담당 부서장과 차장이 면직됐다.

수사에 의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사 문제로 수사 역량도 약화된 것이다.

암호화폐업체 코인베이스와 크라켄, 암호화폐 거래업체 컴벌랜드 DRW는 SEC에 등록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증권업을 해왔다는 이유로 SEC로부터 고발 조치를 당했으나, SEC는 최근 고발을 취하키로 했다.

사법처리를 면하게 된 이들 중 상당수는 트럼프 대통령 측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했거나 트럼프 가족이 소유한 회사에 거액의 투자를 했던 경우였다.

예를 들어 중국의 암호화폐 사업가 저스틴 선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3년 3월에 SEC로부터 시장 조작과 사기 혐의로 고발 조치를 당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2기 당선이 확정된 지 몇 주 후에 트럼프 대통령 가족이 소유한 암호화폐 업체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에 3천만 달러(430억원)를 투자했으며, SEC는 정권교체 후 고발 조치에 따른 소송수행을 중단키로 했다.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