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현장 담은 '광장의 재발견'…"교정 마친 시집 '시와 물질'에 추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시인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그려냄으로써 눈에 보이도록 만들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게 시의 역할인 것 같아요."
최근 시집 '시와 물질'(문학동네)을 펴낸 시인 나희덕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시의 존재 의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시인의 말처럼 '시와 물질'에는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시가 여럿 실렸다. 제빵 공장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샌드위치', 자기 장례 비용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 기초생활수급자 이야기 '존엄한 퇴거' 등이다.
나희덕은 이에 대해 "사회적 문제를 다룬 시들을 썼지만, 그렇다고 제 시가 계몽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단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사람들이 그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표제작 '시와 물질'에서 화자는 화학자이자 시인이었던 로알드 호프만의 "심지어 시도 사람을 해칠 수 있어요"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이어 화자는 "시와 물질, / 또는 시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한다 // 한 편의 시가 /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라고 되뇐다.
이는 시의 특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시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것으로 읽힌다.
나희덕은 "시인으로서 저의 언어가 화학 물질로 만든 독극물이나 폭발물처럼 사람을 죽이는 언어가 아니라 사람을 위로하고 살려내는 언어이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나희덕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다음날 여의도 시위 현장으로 달려갔고, 이날 도로 경계석에 발을 헛디뎌 한동안 전동휠체어를 타야 했다.
여의도에서의 경험과 이때 느낀 감정은 시 '광장의 재발견'이 됐고, 다친 다리를 이끌고 생활한 경험은 시 '내 가장자리는 어디일까'가 되어 이번 시집에도 수록됐다.
그는 "이 시들이 3∼4년 뒤에야 나올 다음 시집에 실리기보다는 지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시집에 싣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미 교정을 마친 상태였던 '시와 물질' 편집자에게 연락해 추가로 실었다"고 설명했다.
"정치는 길을 잃고 / 나는 발을 헛딛고 / 말과 입김은 무성하게 흩어졌지만 // 오래 잠들어 있던 여의도는 목소리들에 의해 깨어났다 / 공원은 다시 광장이 되었다"(시 '광장의 재발견' 에서)
이번 시집에 정치 상황이나 사회 문제를 다룬 시만 실린 것은 아니다. 시 '세포들', '아보카도', '피와 석유', '역청이 있었다' 등에선 물질과 물질의 성질을 깊이 탐구하고 있다.
"근육과 혈관 속의 세포들은 / 매일 조금씩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중 // 대체 무엇을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 방금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간 사람, / 그를 돌아보는 동안에도 세포 몇 개가 사라졌겠지"(시 '세포들' 에서)
시인은 "물질은 흔히 죽어있고 인간에 의해 활용되는 수동적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인간 중심적인 관계성에서 벗어나 바라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단지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그 물질 하나가 얼마나 이 세계 전체에 얽혀있는지 구도를 드러내 보인다고 할까요? 시가 귀 기울여 듣고 담아내는 건 사람의 목소리뿐 아니라 물질의 목소리가 될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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