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시세대 활력 보고서] 뒷방 신세는 옛말…"더 일하며 즐긴다"

연합뉴스 2025-04-14 00:00:09

50~65세 액티브 시니어, 인구 비중 늘고 소비력 확대…자기 행복에 투자

고령화 시대 사회적 기여 모색…"다양한 요구 충족할 정책적 지원 필요"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가 진행한 문화 활동

[※ 편집자 주 = 20대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86세대'가 노인 인구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따라 추던 엑스(X)세대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활력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시니어가 된 세대, 연합뉴스는 86세대 중 처음으로 올해 노인연령(65세 이상)에 편입되는 1960년생부터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까지를 액티브한 시니어 세대, 즉 '액시세대'로 보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액시세대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살펴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액시세대의 고용, 소비, 여가 등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매주 일요일 소개합니다.]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오늘날 빠른 고령화와 길어진 건강 수명은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시니어 세대를 등장시켰다.

'액티브 시니어'라고 불리는 이 세대는 제2의 인생을 개척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가는 고령층을 말한다.

저출생으로 총인구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가운데 액시세대 인구 비율은 점차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경제력까지 갖춘 시니어 세대로, 우리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점점 키우고 있다.

다만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기여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어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가 진행한 문화 활동

◇ '뒷방 늙은이' 거부하며 부상한 새 시니어 세대

액티브 시니어는 1970년대 중반 버니스 뉴가튼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가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는 설명과 함께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한 2010년대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은퇴 후에도 활발한 사회 및 여가·소비 활동을 즐기며, 능동적으로 생활하는 50세 이상의 인구'라고 정의되는데, 사실 이 세대를 규정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황규만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회장은 "젊은이처럼 활동적인 80대가 있는가 하면 50대에도 어르신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분들도 있으므로, 액시세대를 '몇살부터 몇살까지'라고 딱 잘라서 분류하기는 어렵다"면서 "'마음이 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액시세대가 여타 세대와 차별화되는 특징이나 현재 사회에서 처한 상황 등을 제대로 짚어내려면, 연령 기준을 구체화하려는 시도는 필요하다.

먼저 하한 연령은 50세가 적절한 것으로 의견이 모인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55∼64세 취업경험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한 평균연령은 49.4세로, 50세를 밑돌았다. 이는 재취업·창업, 사회활동 참여나 여가 향유 등 다양한 형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연령을 50세로 보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상한 연령은 명확히 고정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경제활동이나 사회 참여가 왕성한 65세까지로 한정해 볼 수 있다.

이런 연령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우리 사회에 유력하게 등장한 액시세대는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부터 X세대(통상 1970년대생) 일부,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 86세대(1980년대 학번·60년대생) 등을 아우르게 된다.

울산시니어초등학교가 진행한 플로깅 활동

◇ '내 행복'에 투자하는 액시세대…인구 비중 늘며 소비력도 확대

액시세대의 눈에 띄는 특징들은 지난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실시한 '2024 액티브 시니어 소비 트렌드 조사'를 통해 잘 도출됐다.

조사 결과 액시세대는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을 지속하려 하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높고 변화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였다. 또 여행이나 취미생활 관련 소비에 적극적이며, 최대 관심사는 건강과 운동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전 시니어 세대들과는 달리 자녀나 가족보다는 자기 행복에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PC 대중화와 인터넷 보급을 체험한 세대답게 디지털 기기 활용에도 능숙하기도 했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액시세대는 지금까지 주로 기업 마케팅 측면에서 중요한 소구 대상으로 인식됐다.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데다가, 구매력이 있는 이 세대가 과거와 달리 소비활동에도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로 분류되는 50∼64세 비중은 2022년 34.7%(1천275만명)에서 2072년 40.9%(678만명)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인구수는 절반 가까이 감소하지만, 고령화와 총인구 감소 등 영향으로 비율은 6.2%포인트 늘어나는 것이다.

같은 기간 생산연령인구의 주축인 25∼49세 비중이 50.6%(1천860만명)에서 46.1%(764만명)로 감소하는 것과 비교하면, 장래 액시세대의 사회적 역할이나 위상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소비 경향 변화도 뚜렷하다.

LG경영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고물가와 경기 불황 등 영향으로 소비 주역이었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대체로 지갑을 닫았지만, 액시세대 시장 규모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55∼69세의 전체 소비지출금액은 2007년에 25∼39세의 40%가량에 그쳤지만, 15년이 지난 2022년에는 90%까지 따라잡았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57년에는 그 비율이 170%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울산시니어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시니어모델반 수업

◇ 사회적 역할 욕구 높지만, 채널 부족…"공공이 기회 열어줘야"

전문가들은 액시세대를 그저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부상한 '소비력을 갖춘 시니어' 정도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 세대의 역할과 영향력이 점차 강조되는 것에 비해, 아직 그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고 수용할 사회적 기반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윤형 울산연구원 문화사회연구실장은 "조용히 노후를 보내는 과거의 시니어 세대와 달리, 액시세대는 '뒷방 늙은이'를 거부하며 지역사회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면서 "약 10년 전부터 국내에도 고령친화도시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액시세대에 특화한 정책은 아직 모자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황규만 회장은 "액시세대의 충만한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대개 65세 미만은 아직 돈을 벌고 싶어 하고 65세 이상은 사회 공헌이나 커뮤니티 활동에 관심이 많은데, 이를 실현할 방법이나 수요처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 액시세대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게이트볼장을 만들거나 공공일자리를 늘리는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활동적 고령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동시에 개인의 이상을 추구할 기회를 정부나 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수관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공공인재학부장)는 "정년 연장 등 일자리 문제를 놓고 청년과 고령층이 대립하면서, 한쪽의 이익을 다른 쪽의 손해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면서 "두 세대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역할을 액시세대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 교수는 "가령 액시세대의 전문성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청년 고용을 창출한 성공 사례가 발생한다면, 이는 긍정적인 나비효과로 번져갈 것"이라면서 "이런 과제를 풀고 정책화하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hk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