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차 진입 안 되고 인파 혼잡…"다른 곳에 만들었어야"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벚꽃 구경하러 왔는데 황톳길 때문에 반토막 난 길을 비집고 다녀야 하네요. 조금 걷다 보면 황톳길이 끝날 줄 알았는데 한참을 이어지더라고요."
'벚꽃 명소'인 서울 안양천 산책로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31)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장년층을 중심으로 맨발 걷기가 유행하면서 지자체가 너도나도 조성한 황톳길이 일반 산책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산책로를 반으로 줄여 만든 경우가 많아 정작 신발을 신고 다닐 수 있는 길이 좁아진 탓이다.
13일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따르면 영등포구는 지난해 안양천 양평교∼양평2 보도육교, 양평1 보도육교∼목동교, 오목교∼신정교 구간 총 1.1㎞ 규모의 맨발 황톳길을 만들었다.
구로구도 이달 1일부터 안양천 고척교 인근 290m 구간의 맨발 황톳길을 운영 중이다.
두 자치구 모두 안양천 벚꽃 산책로 일부를 황톳길로 바꾼 형태로, 기존 폭 4m가량의 길을 절반인 2m 안팎으로 좁혀 만들었다.
성인 2∼3명이 일렬로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인데, 그 이상의 사람들이 양방향으로 이용하려면 몸을 틀어 비켜줘야 한다. 벚꽃 개화 시기에 인파가 몰리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좁다.
구로구 고척교 인근은 신발을 신고 맨발 황톳길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아예 울타리로 분리해 놨다.
이 외 노원구 중랑천 맨발 황톳길 등도 기존 산책로를 좁혀 황톳길을 조성한 사례다.
지난 11일 찾아가 본 안양천은 유아차가 진입하기 힘들 정도로 산책로가 좁았다. 게다가 꽃놀이를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몰리면서 매우 혼잡했다.
길이 붐비자 일부 시민들은 인파를 피해 보도 턱 위로 올라서거나 제방을 따라 걷기도 했다.
반면에 황톳길은 간혹가다 이용객들이 보일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산책 나온 주민들과 꽃구경을 온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했다.
산책로를 1주일에 2∼3번 걷는다는 이용원(64)씨는 "벚꽃 시즌이라 사람은 더 많아졌는데, 황톳길이 생기면서 산책로가 좁아져 불편하다"면서 "산책로와 황톳길 수요가 다른데 이렇게 만든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 영등포 주민도 "원래는 온 가족이 함께 오거나 반려견과 산책하는 길이었는데 모두 어렵게 됐다"면서 "황톳길이 건강을 위해 필요할 순 있겠지만, 하필 이 좋은 길에 만들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황톳길 이용 수요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산책로 일부 구간에만 조성된 것인 만큼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황톳길 이용객은 "산책로가 붐비니 신발을 신은 채로 황톳길에 들어와 걷는 사람을 오늘도 봤다"면서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에 황톳길이 있어야 더 편하게 걷지 않겠나. 다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기존 뚝방길 산책로를 황톳길로 조성할 당시에도 길이 좁아질 수 있다는 고민은 있었다"면서 "인파 쏠림이 심하면 축제 기간에는 황톳길 운영을 중단하고 신발을 신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js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