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출생이라는 우연한 사건이 우리를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집단에 배정하는가, 아니면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집단에 배정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기대수명이 달라질 수 있다."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가장 먼저 병드는 이들은 누구일까. 미국의 저명한 공공보건학자 알린 T. 제로니머스는 신간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돌베개)에서 불공정한 사회 구조가 소외집단의 건강과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한다.
미시간대 공공보건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30여년의 연구를 통해 차별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생리학적 작용을 밝혀냈다. 그는 대도시에 사는 흑인이 같은 권역에 사는 백인보다 일찍 만성질환에 걸리고, 그 원인이 유전적 차이나 생활 습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흑인 산모는 백인 산모보다 출산 중 사망률이 3배나 높고, 특히 이민자 단속이 강화되면 라틴계 여성들의 출산 후유증 비율과 저체중아 및 조산아 출산율이 증가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쇠락한 지역에 사는 백인 빈곤계층에서 태어난 아동이 기대수명이 50세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그의 연구에 의해 확인됐다.
저자는 연구를 토대로 "사람의 건강은 유전자보다 사회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건강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기존 인식을 비판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위한 변화가 곧 공공보건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웨더링'(weather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인종, 계급, 성별 등으로 인한 구조적 차별과 반복적 스트레스가 축적되면 신체가 점진적으로 '침식'된다는 의미다. 끊임없는 차별과 불공정은 노화의 가속은 물론 만성질환, 장애, 심지어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에 노출돼 건강을 잃는 아이러니도 지적한다. 저자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이 성공을 위해 더욱 노력할수록 웨더링의 위험은 커지며, 차별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방진이 옮김. 5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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