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에 "논의의 장 마련해달라" 요청…투쟁 병행하며 대선판 존재감 키우기
협의체 구성될지 주목…정부 의사결정 한계·의료계 주장 국민 지지 여부 관건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정부와 장기간 대치하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8일 정부와 국회에 '논의의 장'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면서 14개월간 지속된 의정 갈등도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게 됐다.
의협은 작년 2월 정부의 의대 2천 명 증원 발표 이후 정부와의 공식 협의에 불참해왔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기점으로 대화와 투쟁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앞세우며 행동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이날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통령 탄핵 선고 이후 우리나라는 정상화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결정권을 갖고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를 향해 "의료 정상화를 위한 의료계의 제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한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으로 불거진 의정 갈등 국면에서 정부와 의료계 대표단체인 의협 간에는 이렇다 할 공식 대화가 없었다. 양쪽에서 대화 메시지가 나오기도 하고, 여러 차례 비공식 회담도 있었으나 협의체 등을 통한 공식 논의는 전무했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와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이 주도한 여의정협의체도 의협 참여 없이 가동됐다.
지난 1월 김택우 회장 취임 이후에도 의협은 대화에 앞서 의대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마스터플랜 제시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먼저 대화의 손을 내민 것이다.
의협의 입장 선회에는 '2천 명 증원'에 강경했던 윤 전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보다 전향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기저에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2025학년도 증원을 막지 못한 채 1년을 넘긴 상황에서 의대생들이 속속 학교로 복귀하며 '단일대오'가 깨지고, 그 과정에서 의협은 '탕핑'('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의 중국어 표현)과 대안 없는 반대만 한다는 비판이 의료계 안팎에서 나오던 상황이었다.
의정 갈등이 조기 대선판의 주요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의료계 유일 법정단체로서 주도권을 쥐고 의료계 요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 또한 의협의 태세 전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의협이 대화를 요구하면서도 전국대표자대회(13일)와 전국의사궐기대회(20일)를 예고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의료계 목소리를 키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의협은 이날 전공의 업무개시명령 등 "무리한 행정명령"에 대한 사과와 의개특위 중단,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확정을 통한 불확실성 해소 등도 함께 요구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되던 의개특위는 자연스레 종료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큰데다 의대생 복귀로 내년 모집정원이 증원 전인 3천58명으로 확정될 전망이어서 향후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면 이들 쟁점에선 의정 합의가 이뤄질 여지가 있다.
다만 이미 발표한 의료개혁 과제를 포함해 세부 의료정책으로까지 안건이 확장되면 합의가 쉽지 않을 수 있고, 현 정부 임기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아 주요 의사결정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특히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방향에 대해 상당수 국민이 공감한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의료계의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지도 미지수다.
의료계와 정부, 정치권의 대화를 통해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전면적으로 복귀해 의정 갈등이 완전히 봉합될지도 불투명하다.
전공의 복귀와 관련해 김성근 대변인은 "이번 탄핵으로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그동안 다친 마음을 열고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논의 테이블을 요청한 것은 사직 전공의와 학생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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