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의사 엄융의의 'K-건강법'…건강도 공부처럼 해야-③

연합뉴스 2025-04-08 10:00:03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 영문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요즘 우리나라 텔레비전, 특히 케이블 채널을 보면 각종 음식이나 건강 요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어떤 프로그램에선 의사들이 나와서 허리가 아플 때 어떤 수술을 하는지 구체적인 수술 방법까지 소개한다. 필자는 이걸 보고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왜 텔레비전 방송에서 의사가 척추 수술에 대해 강의해야 하지? 우리나라처럼 건강 프로그램이 많은 나라가 없다. 무슨 음식을 먹으면 어디에 좋다더라 하는 그런 정보가 너무 많다. 독자 여러분은 그 정보를 전부 믿을 수 있는가?

믿고 안 믿고는 차치하더라도 그걸 다 따라 할 수나 있을까? 만에 하나 그 정보가 모두 믿을 만하고, 그것을 다 따라 한다면 아무도 병에 걸리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신체적 건강 말고 다른 지표도 봐야 한다. 현대인은 신체적 질병은 물론, 정신적 질병으로도 많은 고통을 받는다. 특히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으로 항우울제나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정신적 건강은 신체적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데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을 개인의 질환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질환은 개인의 질병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나 사회와의 연관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환자가 입원해 치료받으면 증상이 호전되다가 원래 속해 있던 가정이나 사회로 돌아가면 다시 악화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개인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질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환경적인 요인이 바뀌어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데, 사실 극단적으로 환경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 스트레스, 그것이 알고 싶다

많은 이가 건강의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스트레스란 과연 무엇일까? 필자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스트레스를 아주 좁은 의미로 해석했다.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스트레스라고 했다. 예를 들어 강의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당장 시험을 치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쥐 한 마리를 잡아서 통로에 매달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만지게 하는 경우처럼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자극으로 인한 급격한 긴장을 스트레스라고 표현했다.

"스트레스, 한방으로 날려버리세요"

그에 비해 요즘은 퇴근 안 하는 상사, 늘어나는 뱃살, 끝없이 오르는 물가 등 주변의 다양한 요소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있다.

본래 '스트레스'(stress)는 '팽팽하게 죄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스트링어'(stringer)에서 유래된 물리학 용어다. 어떤 물체에 외부적 힘을 가하면 변화가 생기는데 그에 대항해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힘을 스트레스라고 했다.

이것을 의학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캐나다 몬트리올대학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 박사다. 그는 1936년에 스트레스를 "정신적·육체적 균형과 안정을 깨뜨리려고 하는 자극에 대해 자신의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변화에 저항하는 반응"으로 정의했다.

살아 있는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스트레스가 질병을 일으키는 중요한 인자"라고 발표했다.

셀리에 박사는 스트레스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당장은 부담스럽더라도 적절히 대응하면 향후 자기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유스트레스'(eustress)와, 대처나 적응에도 불구하고 지속돼 불안이나 우울 등의 부정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디스트레스'(distress)가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유스트레스 개념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스트레스를 나쁜 것,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적당한 긴장감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에 있어서 생산성과 창의력을 높여준다.

스트레스의 종류뿐 아니라 양도 중요하다. 스트레스는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다. 우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정맥이나 심근경색, 뇌졸중으로 인해 급사할 가능성이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은 회장님이 갑자기 목덜미 잡고 쓰러지는 장면 많이 봤을 것이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너무 적으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인위적으로 균이 없는 환경에서 기른 실험용 동물의 경우 외부에서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면역기능이 거의 발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균이 있는 곳에 노출하면 바로 세균 감염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위생 상태가 너무 좋은 환경에서 과보호된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한 편이다. 스트레스가 너무 적어서 오히려 세균 감염에 취약해져 병에 잘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생활의 윤활유로 여기는 것이 좋다.

물론 현대인이 느끼는 스트레스 가운데 대부분이 대처하기도 적응하기도 어려운 디스트레스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이것이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만성 스트레스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신체의 항상성 때문이다. 우리 몸은 적당한 혈압과 혈당, 체온 등을 유지하고자 하는 항상성을 지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항상성이 깨지게 된다.

주부스트레스 해소 격파대회

일시적인 스트레스의 경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 사라지면 몸이 금방 회복되지만,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신체의 항상성을 계속해서 깨뜨리기 때문에 그 영향이 무척 크다.

◇ 스트레스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스트레스란 신체 내·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신체의 반응을 총칭한다. 신체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자율신경계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ypothalamic- pituitary-adrenal axis,이하 HPA 축) 반응이 주된 반응이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구성돼있다. 교감신경이 주로 스트레스반응을 일으키고 부교감신경은 신체 반응을 원상으로 회복하는 기능을 한다. HPA 축 반응은 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코르티솔의 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 뇌의 여러 부분과 자율신경계는 혈액 내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해 신체가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한다. 이를 스트레스반응이라고 하는데, 그 일차적 반응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교감신경은 지금 당장의 생존을, 부교감신경은 미래의 계획을 목표로 기능하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외부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감신경을 촉진하고 부교감신경을 억제해야 한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또 피부와 소화관의 세동맥이 수축해서 혈압이 높아지고, 이를 통해 피부나 위장관의 혈액이 뇌, 심장, 근육으로 집중하게 된다.

그런 다음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최대한 사용해서 이런 기능이 제대로 일어나도록 한다. 따라서 수면, 소화 등의 기능은 억제된다.

반면에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촉진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평화와 휴식, 내일을 준비하는 기능이 주를 이루게 된다. 소화 기능이 촉진되고 심장이나 호흡 기능은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되며 수면도 촉진된다.

소화, 흡수된 영양분을 당장 쓰기보다는 나중을 위해 저장하게 된다.

교감신경 반응은 외부 자극에 맞서 내 몸의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 야생에서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와 마주쳤다고 하자.

그러면 뇌를 돌려서 도망갈지 맞설지 최대한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 다음 결론이 나면 근육의 에너지를 최대한도로 사용해서 달리거나 맹수를 공격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스트레스 반응 자체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기능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스트레스 상황이 만성적으로 반복되거나 스트레스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자율신경계가 교란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는 두통, 불면증, 불안장애, 스트레스성 고혈압, 과민대장증후군, 부정맥, 천식, 만성통증 등 질병이 새로 생기거나 기존에 있던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면역기능을 약화해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계속)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더 자세한 내용은 엄융의 교수의 저서 '건강 공부', '내몸 공부' 등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