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생을 조명하다…'다시, 봄은 왔으나'

연합뉴스 2025-04-07 09:00:04

편지로 만나는 초기 선교사…'언더우드 가족이 뉴욕대학교와 주고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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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 다시, 봄은 왔으나 = 이창훈 지음

박정희 정권 시절 벌어진 '사법살인'인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이 된 8명의 생애를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유신반대 투쟁이 거세지자 1974년 4월 3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활동 금지'와 '반유신 데모를 할 경우 최고 사형까지 집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긴급조치 4호가 발령됐고 이에 공안당국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중앙정보부는 같은 해 4월 25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민혁명당 재건 위원회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 시위를 조종하고 정부 전복과 노동자·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민청학련과 인혁당재건위 관계자 1천24명을 연행해 조사한 뒤 253명을 긴급조치 4호 위반·국가보안법 위반·내란예비음모·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했다.

공판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안 돼 1심 판결이 내려졌고 항소심도 개시 2주 남짓 만에 끝났다. 이듬해 4월 8일 대법원은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우홍선,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여정남 등 8명에 대해 사형 판결을 확정했다. 그다음 날 바로 형이 집행됐다.

이들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사후 32년이 지난 2007년이었다.

책은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해야 할 30∼50대에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사형수 8명의 삶을 가문 내력, 학창 시절, 인간관계, 4·19 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의 활동, 고문을 당하며 수사를 받던 시기나 재판 과정 등을 통해 재구성한다.

저자는 당초 8명의 평전을 쓰고 싶었으나 이들의 생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고 관계자들의 증언이 때로는 엇갈려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또 불공정하게 진행된 과거의 재판 기록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의 문제도 있어 집필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저자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조명한 것은 그늘진 역사를 기록하고 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불의를 경험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불의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중략) 이 책을 마감하는 순간에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삼인. 5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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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우드 가족이 뉴욕대학교와 주고받은 편지 = 언더우드 가족 지음. 허경진·허글 옮김.

미국 북장로교가 파송해 140년 전인 1885년 한국에 입국해 개신교를 본격적으로 전파한 선교사 중 한명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한국명 원두우)와 그의 아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1890∼1951) 등이 미국 뉴욕대학교나 럿거스대학교 측과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었다.

연세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인 연희전문학교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학교 설립에 앞서 미국 전문가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교육제도의 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일제가 만든 제약 속에서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언더우드는 1915년 5월 7일 엘머 엘스워스 브라운(1861∼1933) 당시 뉴욕대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뉴욕대의 교육과정에 관한 최신 책자를 보내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저희 교과과정은 자연스럽게 도쿄제국대학의 계획과 최대한 일치시켜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같은 해 8월 26일 브라운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같은 날 북장로교 해외선교본부 총무인 브라운 박사에게 쓴 편지를 참고로 동봉했다.

동봉한 편지에서 언더우드는 "일본 제국은 교육과 종교를 분리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것이 이곳 정부의 정책"이라며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성경 수업에 모이는 것은 허용되지만, 교과과정의 일부로 종교를 가르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보고사. 352쪽.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