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재해석 창극 '리어' 연출…"깊은 감정·창법 이색적 느꼈을듯"
"무용-연극, 구분보다는 균형 잡기"…"한류, 소통 넓히는 기회"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고민하고 있는 작업들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야죠."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상인 로런스 올리비에상 후보에 오른 창극 '리어'의 정영두 연출은 6일(현지시간) 시상식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만나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정 연출은 지난해 10월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국립창극단이 공연한 리어로 올리비에상 '오페라 우수 성취' 부문 후보로 올랐다.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시상식에 창극이라는 생소한 장르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런던연극협회(SOLT)가 1976년부터 수여해 올리비에상은 미국 토니상, 프랑스 몰리에르상과 함께 세계 공연예술계의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힌다.
정 연출은 후보 지명 소식에 "재미난 일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연출인 자신도, 창극단도 영국에서 쭉 활동해오지 않은데다 영국 공연예술계에 익숙하지 않은 장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올리비에상은 영국 무대에 오른 작품에 시상하는 상인 만큼 웨스트엔드 진출 역사가 짧은 한국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뮤지컬 배우 이태원이 2001년 런던 팰러디엄에서 공연된 '왕과 나'로 뮤지컬 부문 최우수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은 불발됐다. 2013년 배우 윤석화가 제작에 참여한 '톱 햇'이 '최우수 신작 뮤지컬 상' 등을 받았다.
정 연출은 "작품과 창극단, 우리나라 예술을 다시 한번 소개할 기회라 그 자체로 충분히 기쁘다"며 "창극단, 디자이너 등과 함께 작업하며 배우고 영감받은 것들을 다시 한번 환기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리어는 영국이 자랑하는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한국의 소리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정 연출은 "창극이 감정이 깊은 상태에서 소리를 하는 장르라 외국에서 보기에 이색적일 것 같다"며 "오페라와 창법이 굉장히 달라서 보는 사람이 즐겁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에는 주영한국문화원에서 리어 특별 상영회와 현지 관객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정 연출은 "창극을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OTT) 서비스로 봤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었다"며 "그러려면 자료도 축적돼야 하고 여러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장래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페라 우수 성취 부문은 극단 전체 또는 연출, 지휘자, 가수, 배우 개인에게 수여된다. 올해는 '카르멘' 주연 메조소프라노 아이굴 아크메트시나, '페스텐' 주연 영국 테너 앨런 클레이턴과 함께 정 연출이 후보에 올랐다.
이번에 창극 연출로 이름을 높이게 됐지만 그는 오랫동안 '안무가 정영두'로 불려 왔다.
1992년 마당극 극단 현장에 입단해 배우 활동을 시작하다가 무용을 접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늦깎이로 입학해 안무를 전공했다.
무용단 두댄스씨어터를 창단해 '불편한 하나', '내려오지 않기', '텅 빈 흰 몸', '제7의 인간' 등을 선보였고, 그러면서 뮤지컬과 창극 연출로 영역을 넓혔다.
정 연출은 본인에게는 연극과 무용이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장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안무란 공간 안에서 위치, 방향, 거리 등 여러 조건을 '건축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무용에 없는 '말의 힘'은 연극이나 다른 공연예술을 통해 찾는다"며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월 국립오페라단의 '화전가'(작곡 최우정, 극본 배삼식)와 11월 말 국립현대무용단 청년교육단원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예술을 종합적으로 추구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셈이다.
정 연출은 "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신체가 있는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예술 특유의 현장성이 '나를 덜 게으르게 한다'는 측면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도 했다.
리어가 런던 무대에 오른 지난해 'K컬처'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가요와 드라마를 넘어서 미술, 공연, 문학, 언어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정 연출은 "보편적인 방식으로 우리 예술을 풀어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다른 문화권과 소통하는 기회가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에서 선보인 리어의 의미도 그에 비춰 설명했다.
"예전에 활동한 많은 예술가와 단체의 노력으로 이만큼 온 것이죠. 수상 여부를 떠나 이 흐름 위에서 다음 예술가들이 또 뭔가를 할 기회가 될 수 있다면 그게 리어'의 역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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