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덜 써야 할 일본식 표현-②

연합뉴스 2025-04-07 00:00:15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단도리?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 아이디어가 채택되지 않아 뿔이 난 사람도 내치거나 튀어 나가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것, 계속 남아 동료를 돕도록 하는 것, 그래서 생각도 입장도 다른 모두가 계속 '우리'로 일하게 하는 것, 이 모두가 커뮤니케이션이다."

어느 칼럼 중 일부다.

인용부호 속에 있으니 면피한 셈인가? 이런 건 아주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가령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같은 영화의 대사, 다른 사람이 말한 것, 그리고 말글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우 등에 제한적으로 써야 한다.

단도리는 'だんどり', '段取(り)'가 그 실체다.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일을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순서·방도·절차를 의미한다.

일본어에서 보통 '준비가 잘 되다', '순서를 정하다', '절차를 갖추다'라고 할 때 쓰인다.

우리말 순화어로는 '채비', '단속'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일상에서는 '주의해 지켜보다', '마무리(를) 잘하다' 용도로 쓰인다. 규범과 현실의 괴리다.

여기서 '단도리'는 굳이 쓸 필요가 없다. 문맥상 '단도리하는 것' 대신에 '잘 보듬고 배려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고린내 나는 일본말을 동원해서야 되겠는가.

◇ 뗑뗑뗑?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퀴즈 등을 풀 때 '○○○'만 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뗑뗑뗑'은 무엇일까요? 하고 있다.

가히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일본말 같다. 뗑의 실체(實體)는 점(點)이다. 점이 일본 말로는 '뗀/뗑[てん]'이기 때문이다. 부지불식간에 대놓고 일본말을 쓰는 셈이다.

대안은, 직접적으로는 '공공공(空空空)'이다. 사람이면 '아무개, 몇 자(字)입니다.' 아니면 '무엇일까요, 몇 글자입니다'가 바람직하다.

이게 번거롭고 무거우면 차라리 '삐리리'가 낫다. '공개하기 어렵거나 감추고 싶은 말 대신 쓰는 말'이 부사 삐리리다.

'삐리릭'이 아니라 삐리리다. 또, 뗑뗑이 무늬 옷이 아니라 '물방울무늬 원피스' 혹은 '점무늬 셔츠'를 권장한다. 이참에 짚어보면, 소수점 이하 숫자를 읽을 때 '영'(零,0)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0이 수(數) 단위니까 0.108을 '영점일영팔'[영쩜일령팔]로 읽으며 공(空)을 따돌리는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당장, 휴대전화 앞번호 010은 '공일공'이다. 제임스 본드 007은 아직도 '공공칠'이다. 합리적 관용 존중이다. 영어도 그렇다.

1905년은 영어로 [나인틴제로파이브]와 [나인틴오파이브]로 읽는 것, 둘 다 인정한다.

'똔똔'도 잘 쓰이는 말이다. 아저씨들이 많이 쓴다. 역시 일본말이다. 'とんとん'이 실체다. '엇비슷하다', '어상반하다', '팽팽하다' 등을 대신 쓸 수 있다.

'또이또이'는 우리말이다. '똑똑히'의 충청 방언으로 '비슷하다/똑같다/엇비슷하다' 뜻으로 쓰인다.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우리말샘(오픈사전)에서는 인정한다.

◇ 삐까뻔쩍?

나이 든 사람, 그중에서도 아저씨들이 주로 잘 쓴다. 삐까(ぴか)가 일본 말로 '번쩍', '반짝', '뻔쩍', '빤짝' 등의 뜻이다.

그러니 '삐까뻔쩍'하면 잡탕 같은 이상한 말이 된다.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나? 옷이며 구두며 번쩍번쩍하네?" 혹은 "멋진데. 아주 근사하구먼"이라고 고쳐 말해야 옳다.

'곤색'도 생명력이 질긴 것 같다. '감색'(紺色)의 '감'(紺)이 일본어 발음으로 '곤'[こん]이다. 그러니 이것도 한일(韓日)이 뒤섞인 말이다. 우리말로는 '감색', '진청색', '진남색'이다.

여름 생선 중 '아지'라는 생선이 있다. 아지의 실체는 'アジ', 역시 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전갱이다. 아지보다 발음이 어렵고, 음절이 하나 더 많으며, 무엇보다 생선 이름 같지 않아 덜 쓰이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이제부터라도 아지라 하지 말고 전갱이라고 제대로 부르자.

◇ 섭씨/화씨

섭씨는 '攝氏'다. 정확히는 섭이사(攝爾思)다. 스웨덴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1701∼1744)의 이름이 중국어 음역으로 바뀐 것인데, 중국인들이 성(姓)의 앞 글자 섭(攝)만 따고 씨(氏)를 붙인 것이다.

그걸 그대로 들여왔다. 굴욕적인 일이다.

화씨는 더하다. 다니엘 파렌하이트(1686∼1736)는 지금은 폴란드 땅인 독일 단치히 태생 물리학자로 중국에서 이름이 화륜해(華倫海)로 둔갑한다. 성(姓)에서 'Fa'의 앞 글자 화(華)만 떼어내고 씨(氏)를 냅다 붙인 것이다. 그냥 그걸 받았다.

비루한 사례다. [f]의 [ㅍ] 대응도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가 현행 외래어 표기 5원칙 중 다섯째 조항이다. 그러나 새롭게 사정한다면 이건 고쳐져야 할 것이다. 언뜻 떠오르는 대안은 섭씨 대신 '셀 기온'이나 '셀 도(度)',' 화씨 대신 '파 기온'이나 '파 도(度)' 정도가 어떨까 싶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