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 권위주의' 트럼프 2기 시대, 높아진 '반대의 대가'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트럼프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누구도 미국을 보고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지난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정부에 대해 '삼십세' 작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이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그는 심각한 사람이 아니지만 백악관 복귀의 후과는 극심할 것"이라고 했을 때 공명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았지만,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말할 때는 선거운동용 구호로 보는 유권자들이 많았다.
트럼프 1기 정부 말에 1·6 폭동 사태가 있기는 했지만, 시스템으로서 미국 민주주의는 건재했다는 점에서다.
말하자면 "트럼프 시대를 겪어봤지만, 결정적인 일은 없었다"는 전반적인 인식이 '취임 첫날만 독재' 발언까지 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지 않은 밑바탕이 된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 걸쳐서 전례 없는 수준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것의 대가가 커졌다는 점이다.
가령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만' 개칭 방침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요한 취재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말마다 '겨울 백악관'으로 불리는 플로리다주의 사저 마러라고로 향하는 가운데 동행 기자단의 풀(pool) 메모에는 "AP 소속 펜 기자와 사진 기자의 취재가 거부됐다"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영주권을 가진 한국계 미국인 컬럼비아대 대학생이 가자 전쟁 반전 시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추방 위기에 몰린 것도 유사한 사례다.
AP통신이나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 모두 법정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고 최종적으로는 이길 가능성도 있다.
다만 그 과정은 지난할 것이며 특히 개인의 경우에는 고통이 매우 클 것이다.
반대로 반(反)유대주의 방치 등을 이유로 트럼프 정부의 '보조금 삭감 타깃'이 된 컬럼비아대는 정책 변경에 나서면서 호응하고 있기도 하다.
양심의 보루인 상아탑에서 트럼프 1기 때는 볼 수 없었던 일종의 곡학아세격 흐름이 감지되는 것이다.
나아가 1기 때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빅테크 기업들도 2기 때는 대놓고 '줄서기' 행보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트럼프 2기 정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작가 스티븐 레비시키 등은 지난 2월 포린어페어스 글에서 이를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로 규정했다.
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붕괴한다고 해서 미국이 가짜 선거가 진행되고 야당이 감금, 추방, 살해되는 전형적 독재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앞으로 선거가 있고 공화당이 질 수도 있지만, 현직 대통령의 권력 남용으로 경쟁의 장이 야당에 불리하게 기울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이나 일반 시민에 대해 "그들은 여전히 반대할 수 있지만, 반대가 더 힘들어지고 위험해지면서 엘리트와 시민들이 싸움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면서 "저항에 대한 실패는 권위주의 고착화의 길을 열게 된다"라고 말했다.
레비시키 등은 그러나 ▲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헝가리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강력하다는 점 ▲ 트럼프 대통령이 선출된 다른 나라의 독재자에 비해서는 지지율이 낮다는 점 ▲ 시민 사회가 발달해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트럼프 2기 정부 스타일이 영구화되기보다는 일종의 '탈선'에 그칠 가능성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각각 헌법상 권한을 넘어선 권력을 잡으려고 했을 때 지지율이 30% 미만이었으며, 둘 다 실패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연 면역'에 기대선 안 되고 야당의 지속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 내에서는 미국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민주당이 대선에 패배한 지 다섯 달이나 됐지만 아직 단일 대오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위법과 편법 논란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구체적 대응 전략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오히려 상원 1인자인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주요 인사들이 때가 되면 "(지지) 열기는 사라질 것(fever will break)"이라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 희망적 신호도 있다. 대선 경합 주인 위스콘신주의 대법관 선거에서 최근 민주당 성향의 후보가 10%포인트로 이긴 것이 그것이다.
위스콘신주의 대선 레이스가 통상 1%포인트 차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결과를 미국 내 진보 진영에서는 고무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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