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회의, 美관세·국방비 압박에 뒤숭숭…美국무 회견취소(종합)

연합뉴스 2025-04-05 05:00:04

'썰렁한' 나토 76돌…"세계 경제 붕괴시켜놓고 국방비 늘리라고"

나토 수장, '美 그린란드 야욕' 질문에도 쩔쩔…6월 정상회의 예고편?

기자회견하는 나토 사무총장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교장관회의가 4일(현지시간) 미국의 폭탄 관세와 국방비 증액 압박에 뒤숭숭한 분위기로 폐막했다.

나토 창설 76주년(4월 4일)에 맞춰 열린 회의였지만 '생일잔치'는 없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전날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이번 회의에서 나토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 기준을 현행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5%로 상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전방위 위협을 고려할 때 '현실적 경로'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GDP 5%'를 언급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이를 협상용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았다.

국방비 증액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현재 지출 수준을 고려하면 5%가 '비현실적 목표'라는 게 중론이었다.

지난해 기준 미국을 포함한 나토 32개국 회원국의 국방비가 평균 2.71% 수준이고 32개국 중 9개국은 여전히 2% 미만이다.

미국의 국방비 규모가 압도적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미국 역시 GDP 대비 국방비가 3.38%로, 5%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도 협상카드가 되리라는 분석에 힘을 실었다.

이에 6월 네덜란드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실제로는 3∼3.5% 수준에서 지출 가이드라인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루비오 장관은 미국 역시 5%를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고위 당국자가 관련 언급을 한 건 처음이다.

이날도 '미국도 5% 목표를 이행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물론이다.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답했다.

나토 외교장관회의 참석한 美국무

나토 회원국들은 난감해했다.

에스펜 바르트 에이데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5%는 미국의 지출 비율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고 지금으로선 우리는 그 수치를 달성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자국을 포함한 유럽 회원국이 최근 잇따라 국방비 증액을 발표했지만 'GDP 3%'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방비 가이드라인 논의 과정에서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동맹을 가리지 않은 미국의 무차별 '관세 폭격'도 회의장을 뒤덮었다.

그러나 각국이 대미 관세와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게 되면 결국 미국이 원하는 국방비 증액도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국은 EU에 20%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EU 27개국 중 23개국이 나토 회원국이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회의 계기 미측과 비공개회의에서 "세계 경제를 붕괴시켜놓고 (우리가) 국방비를 5% 늘리도록 도와줘서 고맙다"고 비꼬았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보도했다.

회의에 초청된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미국과 유럽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파트너 간 무역전쟁을 한다면 우리의 적들이 이를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도 "한 세기 가까이 우리가 보지 못한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의가 잇따르자 관세는 나토 현안이 아니고 안보와는 별개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내내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미국의 '그린란드 편입 야욕'에 대한 질의에도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하는 등 줄곧 쩔쩔맸다.

애초 이날 오후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던 루비오 장관은 막판에 일정을 취소했다.

루비오 장관측은 '일정상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유럽권 매체들의 '송곳 질문'을 피하려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그는 본부 회견 대신 소수의 국무부 순방 기자단과 따로 만났다.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을 두고는 이견만 재확인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은 러시아가 미국이 중재한 '부분 휴전' 이행을 의도적으로 지연한다고 비난했고, 일부 회원국은 '이행 데드라인'을 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비해 루비오 장관은 휴전 데드라인 등에 관한 언급 없이 "러시아가 평화에 진지한지는 몇 달이 아니라 수주 안에 곧 알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다만 "러시아가 평화에 진지하지 않다면 우리의 입장을 재평가(reevaluate)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의 계획을 지지한다면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최종 합의 도달 가능성에는 회의적이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나토 외교장관회의 참석한 조태열 외교장관

나토 32개국이 이번 회의에서 유일하게 한 목소리를 낸 건 '인도·태평양과 협력 심화'였다.

올해로 4년 연속 한국·일본·뉴질랜드·호주 등 인도·태평양 4개국(IP4)이 초청됐고, 한국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나토 당국자는 이날 '나토-IP4 관계'를 주제로 백그라운드 브리핑(익명 전제 대언론 설명)을 열고 "인도·태평양 지역과 유럽-대서양 양쪽 모두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만큼 앞으로 협력은 더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전임 미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행정부도 나토와 IP4 간 관여를 강화해야 한다는 분명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sh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