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세종대왕과 초정 광천수

연합뉴스 2025-04-05 0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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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광천수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의 초정약수는 세계 3대 광천수로도 알려져 있다.

문헌상으로 기록된 것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세종대왕과 관련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보면 1444년에 세종이 안질과 피부병 치료를 위해 왕후와 세자 등 왕실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대왕은 봄과 가을에 걸쳐 2차례 초정리를 방문해 121일이나 머물렀다. 효과가 있었기에 2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생각되며 당시 동행했던 차남 수양대군은 나중에 왕(세조)이 된 후에도 초정을 찾았다.

세종대왕은 안질을 앓고 있었으면서도 초정을 방문할 때 훈민정음 관련 자료는 챙겼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1446년 훈민정음 반포에 초정약수도 약간은 기여를 했다 볼 수도 있다.

초정행궁에 있는, 세종대왕에게 초정약수를 진상하는 모습의 조형물

초정행궁(청주시 상당구 내수읍 초정리)은 세종대왕이 눈병 등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짓고 머물렀던 행궁이다. 1444년 1월에 완공 후 1448년에 방화로 불에 타 사라졌다고 한다.

청주시와 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초정행궁의 복원을 위해 여러 차례 조사했지만, 초정행궁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청주시는 근처 임의의 장소에 초정행궁 복원이 아닌 재현공사를 해 2020년에 개장했다.

청원군, 초정약수 관광 명소화 추진

실록에는 세종대왕이 행궁에 머물며 치료하는 동안 자신으로 인해 청주 백성의 고생이 많다며 고기와 술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 26년 3월의 글을 보면 "거가(車駕)가 초수리(椒水里, 초정리의 옛이름)에 이르렀다"(3월 2일), "초수리 곁에 사는 백성들에게 술과 음식을 베풀다"(3월 20일), "초수리 근방 농민에게 술과 고기를 하사하다"(3월 24일) 등이 기록이 있다.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세종대왕 영정

세종대왕은 술을 어느 정도 마셨을까?

태종이 양녕대군에서 세자를 효령대군이나 충녕대군으로 교체하려던 시기의 태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술을 마시는 게 좋은 건 없지만 중국의 사신을 대할 때 주인으로서 술을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에게 권하고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적당히 마시고 그칠 줄 안다. 효령대군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역시 불가한 이유다. 여러모로 충녕대군이 임금을 맡을 만하니 충녕으로 세자를 정한다."(태종18년 6월 13일)

물론 태종이 이 이유만으로 충녕대군을 세자로 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술을 소통의 수단으로 봤으며 세종 역시 많이는 아니지만 적당히 마실 줄 아는 것으로 기술돼있다.

옛사람들은 병이 나거나 몸이 허약할 때 술을 약으로 여겨 마시기도 했다.

또 약을 먹을 때 술을 곁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음주를 즐기지 않던 세종은 왕이 된 이후에도 약용으로 가벼이 마시거나 그조차도 마시지 않았다.

세종 4년, 왕은 독감에 걸렸다. 마침 연일 비가 내려 습한 기운이 대궐에 가득했고 백성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많은 신하가 임금에게 혈액순환을 좋게 해주는 소주를 올렸다.

하지만 세종은 "술은 내 체질이 아니다"라며 거절했고 계속된 신하들의 간청에 반 잔을 마시고 내려놨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에게 술은 외교용이고 제례용일 뿐이었다.

청주에는 세종대왕을 기리며 술을 빚는 양조장이 있다.

장의도가(대표 장정수)는 세종~세조까지 네 분의 임금을 모신 의관 전순의가 지은 생활안내서이며 요리책인 '산가요록'에 나오는 '벽향주(碧香酒)' 주방문으로 '세종대왕 어주(御酒)' 탁주와 약주를 재현했다.

직접 만든 누룩에 찹쌀과 멥쌀을 8:2의 비율로 섞고 초정의 물을 사용해 삼양주로 빚었다. 이후 90일간 발효해 숙성시켜 나온 술이다. 2019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세종대왕 어주 약주가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장희도가의 세종대왕 어주 탁주와 약주

청주의 증류주 '이도'는 술 이름에서 세종대왕의 향기가 물씬 난다. 조은술 세종(대표 경기호)이라는 양조장에서 만드는 이 술은 양조장 이름도, 술 이름도 모두 세종대왕에게서 땄기 때문이다(이도는 세종대왕의 이름).

또 다른 의미로, 다른 술과 달리 유기농 쌀을 사용한 술이라는 차별점 때문에 다른 길이란 의미의 이도(異道)라고도 한다.

유기농 쌀과 누룩과 초정약수로만 만든 술로 현재 22도, 25도, 32도, 42도 등 네종류를 만들고 있다. 술의 도수도 세종대왕의 일생과 관계가 깊다. '이도22'는 세종대왕이 22세에 왕위에 즉위했음을 의미한다. '이도25'는 한글 반포를 한 세종 25년을 뜻한다. '이도32'는 세종대왕의 32년 재위 기간이다. '이도42'는 세종대왕이 모든 업적을 이룬 42세의 나이를 뜻한다.

이중 '이도 42'는 2024년도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도 42 375㎖와 750㎖

어찌 됐든 세종은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위인 중 한 분이다. 그가 초정행궁에서 치료를 하며 약주를 마셨으면 더 빨리 나았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상상도 해봤다. 그런데도 그는 와병 중에도 청주 백성에게 고기를 하사하는 애민 군주였고 그것이 그가 지금껏 존경받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