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끝에서 마주친 사랑…소설 '파타고니아, 끝과 시작'

연합뉴스 2025-04-05 00:00:17

이인구 시인 첫 소설

'파타고니아, 끝과 시작' 책 표지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빈 곳이 더 비어지면서 그를 힘들게 하진 않았지만 채워지진 않았다. 진정 살아있는 삶을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태진은 은퇴 후 평생 소원하던 그림에 전념하지만, 전문 화가로 인정받는 일은 그에게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고비사막 등 고된 여행길을 떠나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짓누르는 것들을 내려놓으려 해도 여전히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낀다.

지인들과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떠난 태진은 한 목장에서 동유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여성 넬라를 마주치고 한눈에 반한다.

그는 홀린 듯 넬라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이 그림을 눈여겨본 넬라와 가까워져 이튿날 꿈 같은 데이트를 하고선 헤어진다.

시인 이인구(67)의 첫 장편소설 '파타고니아, 끝과 시작'은 노년에 접어들어 새로운 시작을 갈구하는 남성 태진과 과거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여성 넬라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그린다.

1부 '한 시간 그리고 한나절'은 파타고니아에서 태진과 넬라가 처음 만나는 과정을 그리고, 2부 '지구 반대편에서'는 넬라가 솔직한 감정을 담아 태진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됐다. 3부 '다시 파타고니아'에서는 태진이 다시 파타고니아로 향해 넬라와 재회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감정적으로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사이에 놓인 현실적인 벽도 존재감이 선명해진다.

태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자기 이름을 'TJ'로 불러달라고 넬라에게 부탁하지만, 그가 한국에 아내와 자녀를 둔 남편이자 아버지란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예정된 이별을 향한다.

작가는 파타고니아의 풍경과 두 주인공의 내면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했다.

"빙하들은 무너져 내리거나 녹아 버리기 전까지 모양과 형태는 바뀌어도 자신만의 색깔을 그대로 갖고 있어 시작과 끝이, 탄생과 종말이 한결같은 생명체였다. 그로서는 갈구하면서도 도달하지 못했던 삶의 본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1부 중에서)

이인구 시인은 시집 '늦은 고백'(2006), '그대의 힘'(2013), '거기 그곳에서'(2017), '달의 빈자리'(2021) 등을 펴냈다. 소설을 발표한 것은 '파타고니아, 끝과 시작'이 처음이다.

책과나무. 392쪽.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