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파면] '응원봉'과 '다만세'의 힘…민주주의 새 이정표 됐다

연합뉴스 2025-04-04 15:00:14

계엄부터 탄핵 인용까지 123일…주요 국면마다 목소리 분출

"세계적으로도 드문 비폭력 저항…사회경제적 민주화 숙제로"

탄핵안 가결에 환호하는 시민들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12·3 비상계엄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4일까지 123일 동안 17번의 집회. 주말 밤 서울 도심을 환하게 밝힌 응원봉의 물결은 마침내 윤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3일 기습적으로 선포된 비상계엄이 유혈사태 없이 막을 내린 배경에는 계엄군의 총구에 온몸으로 맞선 시민들이 있었다.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봉쇄를 시도하는 상황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시민 수천 명이 서둘러 국회 앞에 모여 이들을 맨손으로 막아 세웠고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다.

계엄 사흘 뒤인 12월 6일부터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까지 아흐레 동안 시민들은 매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들었다.

12월 7일 첫 탄핵안이 표결되던 국회 앞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15만여명(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모였으나 의원 105명이 불참하며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다.

분노한 시위대는 일주일 뒤 경찰 비공식 추산 20만여명(주최 측 추산 200만명)으로 불어나 국회를 둘러쌌다. 국회는 찬성 204표로 아슬아슬하게 탄핵안을 가결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집회를 상징하는 '촛불' 대신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 여성은 집회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줄임말로 '다만세')와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등 K팝은 새로운 '민중가요'가 됐다. 로이터통신은 "응원봉이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시위대는 '부모님 몰래 온 TK(대구·경북) 장녀 연합', '빡친(화난) 고양이 집사 연맹',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등 깃발들을 통해 분노와 불안을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시민들로 가득한 여의도

'대통령 탄핵' 이후를 상상하며 광장의 목소리는 다양해졌고 농업·노동문제 등으로 의제를 확장하는 양상도 보였다.

탄핵안 가결 일주일 뒤인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트랙터를 앞세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상경 시위에는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 다수가 합류했다.

시위대는 28시간여 동안 경찰 차벽 앞에서 대치한 끝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 이는 전태일의료센터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등 노동단체에 대한 '릴레이 후원'으로 이어졌다.

시위대는 윤 대통령의 신속한 체포를 촉구하며 내란 혐의 수사가 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도 적극 나섰다.

올해 1월 윤 대통령의 첫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된 직후에는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3박 4일 동안 밤을 새웠다. 폭설 속에 은박 담요를 덮어 '키세스 시위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석방되고 헌재 선고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탄핵 반대 진영의 집회도 급격하게 세를 불렸다. 3·1절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광화문에 6만5천명, 여의도에 5만5천명이 모였다.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탄핵 촉구 집회는 막판 위기감이 고조되며 빠르게 결집했다.

집회를 주도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은 공동의장단이 14일 동안 단식 농성에 나서는 등 '총력전'에 돌입했다. 3월 15일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4만2천여명(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모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 등 사회 각계 인사들 또한 잇달아 성명을 내고 헌재의 조속한 파면 선고를 촉구했다.

겨울 초입에 시작된 탄핵 집회는 혹한과 꽃샘추위를 버틴 끝에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나서야 긴 여정의 끝에 도달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으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낸 세계사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제는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성취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과 정치권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행진에 앞서 흔드는 응원봉

away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