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압박에 무게 둔 '담대한 구상'·'8·15독트린' 폐기 운명
北, 尹정부 출범 전부터 단절 나서…'2국가론' 이후 제도적·물리적 조치 속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대북 강경 기조의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일 파면됐지만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직후인 그해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맞물려 식량·인프라 지원 등 경제협력 방안에 정치·군사적 상응조치까지 제공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북측에 제안했다.
그러나 대북 압박에 무게를 뒀다는 평가 속에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내세워 이명박 정부 시절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이라고 깎아내리며 호응하지 않았다.
작년 광복절을 계기로 내놓은 '8·15 통일 독트린'은 북한 주민의 변화를 유도해 통일을 실현한다는 구상으로, 사실상 흡수통일론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북한 또한 남측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하기 보다는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고 대북전단에 대응한다며 툭하면 쓰레기 풍선을 날려 대치 국면을 조성했다.
남북 간 적대행위 전면 중지 등의 내용을 담아 2018년에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도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 등 도발과 쓰레기 풍선 살포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결국 폐기됐고,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8·15 독트린' 등 대북 구상은 그의 파면과 함께 폐기될 운명이지만, 그렇다고 남북관계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기 전인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부터 이미 남측을 차갑게 대해왔다.
남북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하며 남북관계에 미련이 없다는 신호를 강력히 발신한 것도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6월이다.
다만 윤 정부 들어 남북관계 단절 조치가 빨라졌다.
북한은 2023년 4월부터 판문점 채널과 군 통신선 등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모두 끊었고, 그해 말에는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개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남북 간 연결 도로·철도도 폭파하는 등 물리적 단절 조치도 단행했다.
북한이 한미의 대화 제의에 전혀 응하지 않은 채 러시아를 제재의 '구멍'으로 여기며 밀착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무관하게 미국과의 담판을 위해 핵무력 강화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이 '두 국가론'에 따라 대남 무시,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으므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남북관계가 갑자기 좋아지기는 어렵다"고 봤다.
다만 북미 협상이 변수가 될 수는 있다.
2018년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거래를 할 수 있어 북미대화를 위해 한국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과 협상하기 위해선 남북관계가 지금보다는 부드럽기를 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은 미국과 협상에서 한국을 완전히 배제하려 할 테지만 미국으로선 비용 등 현실적인 이유로 한국을 '패싱'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 명예교수도 "한국의 새 정부가 통일을 강조하지 않고 북한의 '두 국가론'을 수용한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반응이 나올 수는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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