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통합과정 중앙정부 역할 필수…'대구·경북' 통합 등 추진 동력 떨어질 듯
인구감소·지역소멸 해소 국가적 과제…新정부 출범·내년 地選 계기 재탄력 전망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이상서 기자 =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현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지방행정 체제 개편 작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됐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민선자치 30년'을 맞아 수도권 집중, 인구구조 변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온 지방행정 체제를 개편하는 작업에 나섰다.
낡은 지방행정 체제로는 더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문제라는 국가적 과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작년 5월 행정안전부는 민간 전문가들로 꾸린 '미래지향적 행정체제 개편 자문위원회'(이하 미래위)를 출범했다.
미래위는 7개월간의 심도 있는 토론과 권역별 현장 의견수렴 등을 거쳐 비수도권 광역시·도 간 통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권고안을 내놨다.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충남 등이 통합 대상 지역으로 지목됐다.
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시·군·구 간 통합, 생활권과 행정구역 간 불일치 해소 등도 개편 방향에 포함됐다.
미래위는 지방행정체제를 정책이 집행되는 '그릇'에 비유하며, 정부의 균형발전과 인구감소 대책 등이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방행정체제가 먼저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행안부는 미래위 권고안을 추진할 지원단을 설치해 적극적인 의견 수렴 등 거쳐 이행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퇴, 윤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하면서 지방행정 체제 개편작업은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게 됐다.
통합 추진을 선언한 대구·경북처럼 광역시도 단위에서 통합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중앙정부 지원 없이 통합 작업이 속도를 내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행정 체제 개편과 맞물려 통합작업이 진행돼 온 광역 시도는 대구·경북을 비롯해 대전·충남, 부산·경남이다.
대구·경북은 작년 10월 행안부, 지방시대위원회 등을 포함한 4자 회담을 통해 통합을 위한 공동 합의문을 발표한 바 있다. 올해 말 통합법 제정을 목표로 실무 협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계획대로 결실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론화위가 출범해 행정통합 지원조례안 제정 등에 나선 부산·경남이나 2026년 7월을 목표로 통합작업을 벌이는 대전·충남도 마찬가지다.
시군구 간 통합이 추진되는 전주·완주, 음성·진천도 통합 과정에서 행안부 등 중앙정부 역할이 필요한 터라 새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보조를 맞춰야 할 상황이다.
다만 인구감소·지역소멸 대응 방편으로 추진돼온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여야 모두 이견이 없었던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시도, 기초 시군구 간 통합작업이 마무리돼 선거에서 첫 통합 단체장이 탄생할 것이라는 유권자 기대감도 새 정부가 행정체제 개편을 미뤄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영근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대선이 열리게 되면 어떤 후보든 공약으로 행정체제 개편을 내세울 것"이라며 "여야 할 것 없이 초광역권 도입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사태의 파장을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지만 국가적 과제나 다름없는 지방행정 체제 개편만큼은 중단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당부도 나온다.
육동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민선자치 30년의 가치가 떨어져선 안 된다"며 "지자체 간 통합과 광역단체 출범, 지역 경쟁력 강화 등 기존 과제를 예정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부분 비수도권 지역은 인구 소멸과 경기 침체 등을 오래 겪으면서 경쟁력 상실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경상권 대표 도시인 부산만 해도 쇠퇴하고 있지 않은가"라며 "이번 기회를 놓쳐 지방 광역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도 "민선자치 30년인 올해 굵직한 성과를 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중앙정부와 여야 간 조율이 절실하다. 합치만 된다면 국회에서도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