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포사 "미국과 관계 개선 최우선 과제"…해법 '난망'
11월 요하네스버그 G20 정상회의 트럼프 불참 가능성도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는 미국과의 관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민이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취임과 함께 미국 정부의 대외 원조를 일시 중단했다. 지난 2월 7일에는 남아공 정부의 토지 수용 정책을 '인종차별적 토지 몰수'로 규정하고 남아공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에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비롯한 보건 프로그램을 위해 미국에서 연간 약 4억4천850만 달러(약 6천570억원)을 지원받는 남아공 전역의 보건 기관에 당장 자금 공백이 생겼다.
2월 말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에서 1주일 간격으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와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는 미국의 마코 루비오 장관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모두 불참했다.
미국은 이어 2월 28일에는 남아공 주재 대사관을 통해 화석 에너지 사용 감축을 위한 기후금융 협약인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 탈퇴를 통보했다. 미국은 남아공 JETP에 5천600만 달러(약 810억원)의 보조금 지급과 10억 달러(약 1조4천462억원)의 잠재적 상업적 투자를 약속했었다.
급기야 미국은 지난달 한 세미나의 발언을 문제 삼아 에브라힘 라술 주미 남아공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추방하기에 이른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종식 이후 남아공의 대사가 주재국에서 추방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처럼 갈수록 꼬여가는 미국과 관계 개선이 최우선 과제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 삼는 토지수용법은 백인의 토지를 일방적으로 빼앗는 게 아니라 공익 목적의 무상 수용이더라도 투기 목적으로 보유하거나 버려진 토지 등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고 소유주와 합의해야 가능하다는 게 남아공 정부의 항변이다.
최근에는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무부)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해 이런 내용을 설명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꼬투리를 잡는 것은 토지수용법이 다가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동맹인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것을 들어 남아공을 반미 국가라고 주장한다.
루비오 장관은 2월 G20 외교장관회의 당시 남아공의 토지 수용 정책과 반미주의라고 비판한 올해 G20 주제(연대, 평등, 지속가능성), ICJ 제소와 같은 대이스라엘 적대 정책 등을 불참 사유로 들었다.
그런데도 남아공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요하네스버그의 미국 총영사관이 있는 거리 이름을 샌튼 드라이브에서 레일라 칼레드 드라이브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레일라 칼레드는 1969년 여객기를 납치해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상징이 된 아랍 여성이다.
지난달 23일 케이프타운으로 귀국한 라술 대사는 루비오 장관이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을 혐오하는 인종 공격'이라고 문제 삼은 자신의 발언은 "인물이나 국가가 아닌 정치 현상에 대한 분석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추방을 훈장으로 삼겠다"고 했다. 다소 반항적인 그의 태도는 국내에서 일부 지지를 끌어냈다.
라마포사 대통령 본인도 지난 2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남아공의 토지수용법을 비판하며 지원 중단을 시사하자 같은 달 6일 연례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괴롭힘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런 행보들이 라마포사 대통령 스스로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 미국과 관계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남아공이 미국과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할 경우 11월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차기 의장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전혀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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