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 메시지 담은 베토벤 음악…어떤 영화보다 극적이고 신나"
10일 예술의전당서 리사이틀…"韓 피아니스트 계보 세계적으로 인정받길"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베토벤이 침묵 기간을 깨고 작곡하면서 진화해 간 방향은 통일(unity)이에요. 서로서로 손잡고 화합하는 메시지 때문에 악장이 구분된 소나타를 더 큰 하나로 만들려고 했어요. 특히 후기 소나타는 합창 교향곡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죠. 어느 시대보다 그 음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3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이 시대에 베토벤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된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며 이렇게 답했다.
최희연은 국내 피아니스트 계보를 잇는 대표 연주자다. 6살 때 인천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며 데뷔했고 비오티, 카펠, 에피날, 부소니 국제 콩쿠르 등에서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4년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진행하며 '베토벤 스폐셜리스트'(전문적인 연주자)로 꼽히기 시작했다.
최희연은 지난달 28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했다. 음반을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2015년 첫 녹음을 시작한 이후 약 10년이 걸렸다.
그는 베토벤 음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음악을 전혀 전공하지 않은 저의 어머니가 베토벤을 특별히 좋아했다"며 "일찍이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려운 시기에 제가 베토벤 곡을 연주할 때면 어머니가 뛰어와서 '작곡가가 누구냐', '너무 좋다'고 말씀하셨다. 베토벤 음악은 어머니께 힘과 용기를 줬던 음악"이라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베토벤 음악의 특징은 항상 문제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발전부인데, 해결 과정이 속을 후련하게 해주고 천재적이고 카타르시스를 준다"며 "어떤 드라마틱한(극적인)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신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희연은 베토벤 소나타를 녹음하는 10년간 그의 음악을 더 알아가면서 재미가 더해졌다고 했다.
베토벤 음악을 녹음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베토벤 소나타를 녹음하기로 결정한 것은 2015년보다 10여년 앞선 2003년이다. 그러나 2004년 결혼 뒤 임신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는 "(당시) 아이를 잃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모든 것을 아이 생명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계약을 중단했다"고 돌아봤다.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녹음은 무기한 연기됐다.
그러던 중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로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을 받으면서 그의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2015년 녹음을 시작한 이후 자신의 베토벤 연주 실력에 대한 회의감으로 중단하기도 했지만, 프로듀서 마틴 자우어, 조율사 토마스 휩시 등의 격려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특히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가 버팀목이 됐다.
그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연주곡은 베토벤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과 30번, 31번, 32번 소나타다.
최희연은 "후기 소나타 세 곡(30·31·32번)이 중심이다. 최근 들어 제가 가장 친밀함을 느끼는 곡들"이라고 소개했다.
'발트슈타인'은 베토벤 곡 연주와 녹음을 도와준 고(故) 한스 라이그라프 교수, 故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회장, 故 문계 음반 수집가에게 헌정하는 마음을 담아 선곡했다. 이 곡은 베토벤이 후원자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희연은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31세이던 1999년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고 2023년부터 미국의 명문 음대인 피바디 음악원(Peabody Institute)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국내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에 관해 "너무 자랑스럽다"며 "국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임윤찬, 조성진, 그 외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다. 관심과 특별한 사랑으로 이들을 계속 후원하고 지원해주고 아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희연은 다만 "너무 (국내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다 보니 경쟁으로 눌리거나 나래를 활짝 펴지 못한 일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아울러 대회에서 이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음악가와 음악 공동체가 음악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악은 현상도 아니고 곡예도 아니다. 수 세기 역사가 들어간 깊은 문화"라는 게 최희연의 생각이다.
그는 한국 피아니스트 계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길 바랐다.
"진정한 음악 문화가 생기고 한국 음악가들이 세계에서 인정받았으면 합니다. '러시안 스쿨'(러시아 파), '프렌치 스쿨'(프랑스 파)처럼 '코리안 스쿨'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보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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