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희생자 고 김희숙씨 유족 사연에 추념식 참석자들 눈물
오영훈 지사 "유가족 채혈이 유일하고도 중요한 단서" 참여 당부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나같이 부모 못 찾은 사람들 꼭 한번 피검사라도 하고, 할수있는 것 다 해서 한번 찾아보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원이라도 풀지."(제주4·3 희생자 고 김희숙씨 아들 김광익씨)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7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는 4·3 당시 행방불명됐다가 발굴유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 75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고 김희숙씨와 유족의 사연이 소개됐다.
유족들은 김희숙씨가 29세였던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예비검속돼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것으로 알고 지냈다. 4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진 아들 김광익씨는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섯알오름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손자 김경현씨 채혈로 유족들은 유해를 찾을 수 있었고, 유해가 섯알오름이 아닌 제주공항에 묻혀있었던 사실도 알게 됐다.
이날 추념식장에서는 손자 김경현씨가 딸 해나양과 함께 무대에 올라 사연을 설명했다.
김경현씨는 "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된 후 고향 마을에 살 수 없었던 아버지는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사진들도 모두 잃어버렸다"며 아버지의 고달팠던 삶을 전했다.
이어 "예전 같지 않게 기운이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혹시나 할아버지 유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여름 제가 나서서 유가족 채혈을 했다"며 "며칠 뒤 저랑 어느 정도 DNA가 일치하는 분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버지와 형님도 DNA 검사를 하게 됐다"고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김씨는 "이렇게 채혈 한 번의 결과로 할아버지 유해를 찾았고, 섯알오름에서 돌아가셨을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제주공항에 묻혀 계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며 "비로소 4·3 유가족으로서 4·3이 뭔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셨을 때 외치셨던 그 말, 저도 아버지께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그의 딸 해나 양도 "한강 작가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작별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했는데, 우리 가족은 이제 오랜 아픔과 작별하고 증조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며 "할아버지가 힘들었던 시간은 뒤로 하고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의 이야기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격려의 박수를 힘껏 보냈다.
현재까지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 유해 총 419구가 발굴됐으나,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147명 뿐이다.
제주도는 4·3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해 유족들에게 유전자 정보 확보를 위한 채혈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채혈은 제주한라병원과 서귀포열린병원에서 이뤄지며, 4·3 행방불명 희생자의 직계가족과 방계 8촌까지 참여 가능하다.
이날 추념식장에서도 희생자 유가족 채혈 부스 2곳이 운영됐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마지막 단 한 분의 이름까지 모두 찾을 수 있도록 유해발굴과 신원 확인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가족 분들의 채혈이 유일하고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생이별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신 분들이 손자와 조카 채혈 덕분에 비로소 가족 품에서 영면에 들 수 있었다"며 "직계는 물론 방계가족들도 DNA 채혈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활동 종료가 진실규명의 중단으로 종결돼선 안된다"며 "반드시 3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가족 품에서 영면하실 수 있도록 유해 발굴과 유전자 대조 과정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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