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일으킨 대격변…기후변화가 낳은 새로운 종류의 화재"
英 최고 논픽션상 수상작 '파이어 웨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처음에는 흔한 산불이나 들불인 줄 알았다. 소방당국에선 불을 '맥머리 임야화재 009호'라 명명했다. 2016년 발생한 9번째 화재라는 뜻이었다. 발화한 지 채 하루밖에 안 됐지만 009호는 남달랐다. 최초 발견 시점보다 500배나 불의 규모가 커졌고, 날름거리는 불길은 빠른 속도로 도시를 향해갔다. 그래도 포트맥머리 시장과 소방서 측은 낙관했다. 거대한 캐나다의 수림에서 임야(林野) 화재는 흔한 일이고, 화마를 처리하는 데 익숙한 백전노장 소방대원이 200명 정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12년째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노련한 멜리사 블레이크도 그때까진 예상하지 못했다. 불을 완전히 진화하는 데 15개월이나 걸리게 될 줄은.
작가 존 베일런트가 쓴 '파이어 웨더'(곰출판)는 2016년 캐나다 석유산업의 중심지인 포트맥머리시에서 발생해 10만여명이 대피하고, 100억 달러(약 14조7천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낸 포트맥머리 임야 화재를 조명한 르포다. 저자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자원개발과 그로 인해 촉발된 기후변화, 그리고 이 모든 결과물인 화재 앞에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마치 재난 영화처럼 실감 나게 그려냈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23년 영국 최고 권위의 논픽션상인 '베일리 기포드상'을 받았다.
사실 '009호'가 큰불로 번질 가능성은 초기부터 점쳐졌다. 화재 면적은 초기 발화가 발견된 후 2시간 만에 1만6천㎡에서 60만7천㎡로 확대됐다. 임야 화재는 보통 밤이 되어 공기가 서늘해지고 이슬이 맺히면 잦아들기 마련인데, 불은 계속 번져만 갔다. 이상고온도 불의 확산에 한몫했다. 통상 5월 초 북미 아북극 지역의 온도는 15도 안팎인데, 2016년 5월 3일 낮 최고기온은 32도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여기에 강풍까지 겹쳤다.
불은 발화점에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훈소(薰燒), 불이 침엽수림의 나무꼭대기를 타고 올라가는 '수관 화재', 그리고 높은 나무에 있던 불씨가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 먼 지역 나무까지 태우는 '비화'(飛火)로까지 확대됐다. 저자는 이런 임야 화재의 '3단계'가 "마치 중세 시대의 전쟁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설한다. 훈소는 보병과 같고, 수관 화재는 기마 부대와 비슷하며 비화는 수색대와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훈소-수관화재-비화로 이어지는 '화마의 콤비네이션' 속에서 불은 결국 마을까지 번졌다. 주민들 삶의 안락한 방파제 구실을 했던 집들은 이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오늘날 거의 다 석유제품으로 이뤄진 가구"를 비롯해 집에는 석유제품이 넘쳐났다. 게다가 포트맥머리 지역은 석유로 일어선 오일머니 동네답게 주변이 온통 정유시설이었다. 불이 더욱 크게 번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포트맥머리 화재는 과거 150년 동안 나란히 성장한 석유산업과 화재의 양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탄화수소 자원 개발, 그로 인해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날씨가 급변하는 현상 사이에서 발생한 맹렬한 시너지였다…. 전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불이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저자는 화재의 원인을 추적하며 온실가스 방출과 건조화 현상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아울러 제대로 규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와 북미 석유산업의 얽히고설킨 역사를 소개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 포트맥머리 화재뿐 아니라 LA 화재, 그리스 산불 등 최근 수년간 '뜨거운 지구'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산불과 들불이 일시적인 재해가 아닌 탄소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과 기후변화가 맞물린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다. 저자는 이대로 인류가 폭주하다간 진짜 대멸종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과거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던 기후변화가 단 두 세기만에 일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정도면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생물이 거의 없는 대격변이다. 다시 평형상태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지구 생물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효영 옮김. 5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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