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왜 그럴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심화하고, 유럽에서는 러·우 전쟁이 이어지는 와중 미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았으며, 우방국과는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기후 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안보 문제, 금융시장 변동성 등 전방위적으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세계 질서 재편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바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부상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는 1969년 정치학자 오글레스비(Carl Oglesby)가 처음 사용했다. 이는 지리적 개념이 아닌 정치·경제적 개념이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한국 등 선진국으로 분류되어 온 국가를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를 포괄한다. 냉전 시대에 '제3세계'라 불리던 지역이 글로벌 사우스로 재정의 된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탈식민주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저개발국가들의 상상공동체로서, 그 역사적 뿌리는 깊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가 시발점이었다. 29개국 대표들이 모여 상호 존중, 협력 증진 그리고 공존의 뜻을 모아 '반둥 10원칙'을 선언했다. 이후 1961년 베오그라드(유고슬라비아)에서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 NAM)으로 발전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확대를 모색해 온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1964년 77그룹(G77)을 통해 경제적 연대를 강화했다. 2015년에는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하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이러한 연대의 역사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미·소 대결 구도가 이어지던 냉전 시기엔 주변부에 머물렀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주도 질서가 신냉전체제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이 작용했다. 먼저, 중국·인도·브라질 등 글로벌 사우스를 대표하는 브릭스(BRICS)의 경제적 약진(躍進)이다. 1992년 글로벌 사우스의 GDP 비중은 전 세계의 6%에 불과했으나 2023년에는 12%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IMF가 2023∼2029년 글로벌 사우스 국가의 GDP 성장률을 연평균 6.3%로 전망하고 있단 사실이다. 이는 선진국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노스(3.9%)의 전망치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다.
다음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 국제 갈등을 적절히 중재하지 못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약화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으며, 강대국들에 글로벌 사우스의 국제 정치적 뒷받침이 중요해졌다.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아프리카 국가만 해도 54개국이다. 세계 인구(81억명)의 67%(54억명)가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속한다. 이들의 정치적 지지와 더불어 경제적 수지타산을 따져보았을 때, 글로벌 사우스는 더 이상 서구의 종속적 파트너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미국과 서방세계는 러시아를 글로벌 거버너스 차원의 제재를 하고 싶었지만, 아프리카 국가 대다수가 기권을 표하는 바람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렇듯 세계정세의 게임 체인저로 등장한 글로벌 사우스 중에서도 특별히 더 주목해야 하는 곳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이다. 아프리카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할 수 있다. 우선, 아프리카 대륙은 2021년 이후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어 하나의 경제 공동체이다. 반줄원칙에 따라 아프리카연맹(AU)회원국이 비회원국과 국제회의를 개최할 경우 AU 의장국을 포함한 8개 권역 대표부 등 대륙 구성원 모두가 참여권을 가지고 있다. 즉 아프리카는 정치·경제 공동체적 성격을 내재하기에, 아프리카와의 외교적 접촉과 문화적 교류 채널을 단순화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에는 핵심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배터리 핵심 원료인 코발트는 세계 매장량의 52%가 아프리카에 있으며, 특히 생산량의 70%를 콩고민주공화국이 차지하고 있다. 망간은 세계 자원량 중 70%가 아프리카에 매장돼 있다. 이 외에 백금, 크롬, 흑연, 리튬, 니켈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주요 광물 자원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전략 자원과 더불어, 인구 증가와 보장된 젊은 노동 인력 또한 아프리카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1년 아프리카의 합계출산율은 4.31명으로, 세계 평균(2.3명)의 두 배에 가깝다. 인구 증가는 자연스럽게 젊은 노동력의 확대로 이어진다. 이는 경제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제가 된다. 동시에 이들이 소비자이기에 내수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유엔은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25%가 아프리카인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아프리카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변화의 바람에 어떻게 발맞춰 가야 할까. 우리는 아프리카와 접점을 모색하면서 미래지향적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지리적으론 멀지만, 역사적 궤적에서 우리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었듯이, 아프리카 또한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 아래 고통받았으며, 독립 이후에는 가난과 혼란의 시기를 경험했다.
1962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약 91달러였다. 당시 필리핀(약 200달러)이나 아프리카의 가봉(약 350달러)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룩해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의 GNI는 3만6천624달러(약 5천351만원)로, 세계에서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여섯 번째를 기록했다. 이러한 경이로운 발전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역으로 우리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파트너가 아니다.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이자 지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해 개최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우리나라는 아프리카에 2030년까지 100달러 규모의 ODA 사업 지원을 이어가기로 했다. 또한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140억달러 규모의 수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과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와는 교역 및 투자, 개발 협력 등 유의미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제 우리는 이를 발판 삼아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 공급망의 다양화를 꾀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성장 요소와 적정 기술을 적재적소에 모종해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효율적 접근을 위해, 지역 권역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아프리카 내에서 포용적 동반 성장을 이룩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특히 아프리카의 약진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이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에티오피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단 한 조각의 나무는 연기만 낼 뿐 불을 낼 수는 없다" 아프리카와 손을 맞잡고 긴밀한 파트너십을 맺을 때, 우리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불씨를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수 교수
현 한양대 유럽아프리카연구소장 겸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교정치', '현대아프리카의 이해' 외 다수, 외교부·법무부·한―아프리카재단·재외동포청 등 공공기관 정책 자문위원 및 한―아프리카 경제협력위원회 한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