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다채로운 수집의 세계…영월 박물관 기행

연합뉴스 2025-04-03 00:00:43

(영월=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행도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공간을 옮겨가며 문화예술 분야 수집품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강원도 영월을 찾아 각양각색 세 곳의 박물관을 둘러봤다.

◇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찾아간 영월

취재팀은 무궁화호를 타고 영월에 다녀오기로 했다.

영월에는 KTX가 다니지 않아 오전 7시 34분 일찍 출발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객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통학하는 학생, 등산객 등이 눈에 띄었고 이들의 웃음소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덕소, 양평, 용문, 원주, 제천 등 10여개 역을 거쳐 영월에 도착했다.

3월인데도 차창 밖으로 아직 쌓인 눈이 남아있는 산들이 스쳐 지나갔다.

영월역은 머릿속에 한옥의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던 역에 내려 외관을 마주했다.

"단종의 능이 있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고운 단청의 아담한 한옥 역사"라는 안내판의 설명이 와닿았다.

역 광장에는 난고 김병연(김삿갓)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와 인연이 깊은 영월에는 난고 김삿갓문학관이 있다.

영월은 2008년 박물관 특구로 지정됐다.

◇ 사진으로 보는 세상…동강사진박물관

역에서부터는 차량을 이용해 인근 동강사진박물관을 찾았다.

국내 첫 공립 사진박물관을 표방하는 곳으로,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이곳에서 만난 정순우 학예연구사는 박물관이 한국 사진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비롯해 1천5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이 방문했을 때는 '시간의 기억'이라는 주제의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중인 사진으로 접한 세상은 다채로웠다.

1950년대 서울의 한옥, 청계천 수표교, 뚝섬 유원지 풍경 등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에 따라 작품 구도와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 사진 속에는 담겨 있었다.

겨울철 우물 옆 땅바닥에 언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어린이들, 산더미처럼 배추가 쌓인 야외 김장 시장, 부산의 판자촌이 보였다.

지게꾼, 머리에 보따리를 인 여성, 연탄을 나르는 소년 등 수많은 사람이 보였다.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사진 속에서 고단함, 즐거움, 천진난만함 등 다양한 표정이 읽혔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192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카메라를 전시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선 총 130여점의 클래식 카메라를 소장하고 있다.

◇ 독특함과 다양성…인도미술박물관

다음으로 읍내에서 차량으로 40여분 걸리는 인도미술박물관을 방문했다.

충북 제천과 인접한 영월군 주천면 근처에서 박물관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그 너머로 분홍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흔한 색깔이 아니어서 어떤 박물관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내부에 들어서니 난로가 보였다. 따뜻한 기운을 느끼고 전시실로 들어갔다.

민화, 조각, 민속공예품 등이 생각보다 넓어 보이는 공간에 가지런하게 전시돼 있었다.

전시작만 봐서는 어떤 작품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박여송 관장이 인도의 종교와 사회, 작품의 소재와 의미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많은 사람에게 인도미술은 생소하다.

설명 여부에 따라 관람객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어 가능하면 이처럼 해설을 곁들인다고 한다.

설명을 듣는 동안 인도미술에 독특함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폐교를 활용한 이 사립박물관은 2012년 문을 열었다.

박 관장은 1980년대 초 인도미술에 매료돼 인도에서 살고 여행하며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인도미술에 대해 "너무나 다양해서 한번 스쳐 지나간 것을 다시 접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취재팀도 섬유에 페이즐리 문양을 이용한 프린팅 체험을 해 봤다.

◇ 차 한 잔 어때요…호안다구박물관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호안다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문 닫은 분교를 재단장해 2007년 개관한 사립박물관이다.

내부에는 한국, 중국 등의 다양한 다구가 전시돼 있었다.

이곳에선 찾아오는 관람객이 시간 여유가 있다면 차 한 잔을 대접한다고 한다.

취재팀도 전시된 다구를 둘러본 뒤 체험실 의자에 앉았다.

먼저 찻잔을 덥히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차를 따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물 끓는 소리와 차 따르는 소리를 들을 때, 차향을 맡을 때 잠시 고요함이 느껴졌다.

차영미 관장은 "차는 오감을 느끼는 것으로, 그것 자체가 명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식과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좋으니 개인에게 맞는 방법으로 차를 즐겨볼 것을 권했다.

이곳에선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례 교실을 운영하기도 한다.

차 관장은 다구를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이후에 박물관을 열게 된 계기가 됐다고 들려줬다.

이곳은 다구나 다례에 관심 있는 이들이 주로 방문한다고 한다.

박물관 세 곳을 방문하고 나니 이러한 공간이 개인의 관심사나 취미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반도지형과 그림 같은 산세

영월이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풍경 중 하나가 한반도지형이다.

하천의 침식과 퇴적 등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으로 유명하다.

동강과 함께 영월을 흐르는 대표적인 하천인 서강 지역의 대표 경관 중 하나로 꼽힌다.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박물관을 방문한 뒤 읍내로 돌아가는 길에 한반도지형에 들렀다.

주차장에서 20여분 정도 올라가 전망대에 다다랐다. 한반도지형 뒤로는 시멘트 공장이 보였다.

한반도지형과 이어진 산세의 윤곽은 삼각형의 꼭짓점이 여러 개 솟아있는 것처럼 선명하고 깊어 보였다.

구름 낀 하늘 아래 길게 펼쳐진 산세가 그림처럼 느껴졌다.

완연한 봄이 되면 이곳에도 푸르름이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망대를 내려왔다.

◇ 곤드레밥과 더덕구이, 다슬기해장국

여행에서 먹을거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여행 첫날 읍내 식당에 들러 곤드레밥과 더덕구이 메뉴를 주문했다.

곤드레밥에선 진한 나물 향이 났다.

양념장을 넣어 슥슥 비벼 먹었다.

채 썬 양파와 어우러진 더덕구이는 부드러웠다.

취나물 등 다른 밑반찬도 간이 강하지 않았다.

약하게 떫은맛이 나는 도토리묵, 어수리 나물을 넣어 만든 전도 풍미가 있었다.

영월역 건너편에는 다슬기해장국집이 몇 곳 있다.

다음날 이 중 한 곳을 찾았다.

취재팀이 시킨 해장국에도, 비빔밥에도 푸르스름한 다슬기가 듬뿍 들어간 게 눈에 띄었다.

다슬기 특유의 맛이 잘 느껴졌다.

영월읍 서부시장에선 아침부터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메밀전병을 굽는 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