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산이 벌게지더니 폭탄 날아오듯이 불똥이 날아오고, 나도 숨이 안 쉬어지는데 80, 90살 노인이 숨 쉴 수 있겠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저희가 마을에서 제일 젊은 편이니까, (주민들 대피시킬) 사람도 별로 없었고…"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을 거쳐 영덕 서쪽 경계 지점까지 확산한 지난달 25일 오후 7시 40분쯤.
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 이장 김필경(56) 씨와 어촌계장 유명신(51) 씨는 산불이 동쪽 끝까지 번지던 당시 주민들을 대피시켜 방파제로 몸을 피했던 아비규환과 같은 순간을 이렇게 떠올렸습니다.
김 이장과 유 계장은 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산불이 번졌을 때 이 마을 주민 약 60명 중 상당수는 집에 머물고 있거나 이미 잠든 상황이었다"며 "어르신들이 일어날 때까지 창문을 두드리고 문을 발로 차면서 고함을 질러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주민 대피를 도운 또 다른 주인공은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수기안토(31) 씨.
8년 전 한국에 온 뒤 줄곧 영덕군에서 선원으로 근무한 그는 할머니를 "할매"란 경상도 사투리로 부를 정도로 한국 생활이 능숙한 편입니다.
수기안토 씨는 고령으로 거동이 어려운 주민들을 업고 수백m 떨어진 마을 앞 방파제까지 대피해 다수의 인명을 구조했습니다.
그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할매들을 업고 뛰었다. 80살, 90살 할매, 할배들도 있었다"면서 "(그분들은) 빨리 못 걸어서 (업고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법무부는 수기안토 씨에게 장기거주(F-2) 자격 부여를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F-2 비자가 발급되면 수기안토 씨는 90일 이상, 법무부령으로 정하는 체류 기간의 상한 범위 내에서 대한민국에 머물 수 있습니다.
김 이장은 "수기안토는 한국 사람 같다. 나이는 어려도 어른들에게 잘한다"면서 "주민들 구조할 때도 어느 집에 어느 노인분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유 계장도 "(장기거주자격을) 받아서 한국에서 경험을 많이 하고, 또 돈도 많이 벌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제작: 진혜숙·변혜정
영상: 독자 임청길·전대헌 제공·연합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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