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 "판소리, 삶의 얘기 친근하게 전하는 게 매력"

연합뉴스 2025-04-02 11:00:24

"통영음악제 관객 만나 기뻐"…LG아트센터서 "갈고 빚은" 신작 공연

뮤지컬·밴드 등 다방면 '재주꾼'…"모든 창작 장르가 궁금해"

통영국제음악제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통영=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네가 열녀라지?"

지난달 29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소리꾼 이자람이 동초제 춘향가 중 어사와 춘향의 상봉 대목을 읊었다. 극 중 이몽룡은 어사출두로 변 사또를 쫓아낸 뒤에도 춘향을 모르는 체하며 풀어주지 않고 있다. 춘향에게 열녀가 맞느냐며 자기 수청을 들라는 이몽룡을 한참 연기하던 이자람이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 "(이몽룡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판소리의 매력은 높은 경지의 어려운 테크닉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삶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건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접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알고 보니 나와 비슷하게 '허당'이거나 털털한 면을 갖고 있을 때 갑자기 확, 가깝게 느끼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판소리 공연을 펼친 한국의 대표 소리꾼 이자람이 연합뉴스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판소리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영국제음악제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그는 "(판소리는) 조선시대에는 대중에게 가장 가까운 장르였다.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장르였다"며 "그런데 국가 무형유산으로 남을 만큼 높은 공력과 예술적 테크닉이 대단하다 보니 점점 '높은 경지의 어려운 장르'로 인식이 바뀌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서 이자람은 일반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소리로 춘향의 애환을 노래하다가도, 본인 말투로 춘향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며 관객 눈높이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관객은 "잘한다", "얼씨구"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화답했다.

통영국제음악제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클래식 공연으로 주로 채워진 올해 통영음악제에서 이자람의 전통 판소리는 단연 눈에 띄는 장르였다. 이자람은 단가 '편시춘'을 시작으로 강산제 '심청가' 중 심봉사의 젖동냥 대목과 심청의 동냥 대목, 동초제 '춘향가' 중 어사와 춘향모의 상봉 대목 등을 들려줬다.

이자람은 "봄날의 통영음악제를 좋아한다"며 "편시춘은 '봄날의 한 조각'이란 뜻의 단가다. 계절과 어울릴 것 같아 골랐다"고 설명했다.

"심청가와 춘향가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살리는 대목들로 구성했어요. 사람의 마음이 점점 굳어져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여러 기사나 매체의 소식들에 모두가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서로를 늘 도울 자세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다른 장르의 음악 향유자를 만나는 기회가 모두에게 흔한 기회는 아니지 않냐"며 "전통 판소리를 들고 통영음악제를 사랑하는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했다.

통영국제음악제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이자람은 전통 판소리뿐만 아니라 창작 판소리로도 잘 알려진 소리꾼이다. 이달 7일부터 13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5년 만의 신작 '눈, 눈, 눈'을 공연한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을 원작으로 한 창작 판소리로 이자람이 직접 각색했다.

그는 "소설을 처음 읽을 때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혼자서 '으아!', '어떡해!', '뭐?', '정말?'과 같은 탄성을 지르며 읽은 참으로 흥미로운 소설"이라며 "이 소설이 가진 이미지, 이 소설을 읽으며 제가 놀라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깨달은 과정을 관객분들께 잘 전달해드리고 싶어 긴 시간 꼼꼼하게, 여러 차례 수정하며 갈고 빚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자람,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연습 장면

이자람은 자기에게 인상적이었던 원작을 선택한 뒤 인상적인 부분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했다. 그는 그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 등을 원작으로 창작 판소리를 선보였다.

그는 "(원작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로지 하나다. 소설을 읽고 나서 책을 덮을 때 내게 '무언가'를 주느냐 마느냐다"라며 "살다 보면 아주 가끔 제 삶에 무언가를 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게 강렬한 질문일 때도 있고 알 수 없는 감동일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마치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질을 하듯 이야기를 찾아 다닌다"며 "작품을 만나면 그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한참을 헤맨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각색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소리꾼 이자람

이자람의 예술은 판소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간 뮤지컬 '서편제'에 출연한 것을 비롯해 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리더 겸 보컬로 활동했고 수필집 '오늘도 자람'도 냈다. 그는 배우, 가수, 작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재주꾼'이다.

그는 다양한 활동의 원동력을 묻는 말에 "호기심인 것 같다"며 "아직 제게 호기심이 남아 있어 참 감사할 뿐이다. 저와 다른 장르에서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의 삶과 생각, 방식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향후 도전할 영역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계속 도전할 뜻을 내비쳤다.

"모든 창작 장르가 궁금합니다. 그때그때 제가 교만해지는 것에 회초리를 때려주는 모든 경험을, 기꺼이 맞이하며 살고 싶습니다."

encounter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