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피해 안동 길안면 배방리 마을…빈집 활용, 임시 거처 마련
"얼른 끝내고 약 쳐야" "이 난리 통에 벌들 꽃가루 묻혀오는 걸 보면 신기"
(안동=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경북 산불로 피해를 본 주민들이 일상 회복을 위해 마을과 일터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1일 경북 안동시 길안면 배방리.
오병철(65)씨는 사과나무 가지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고소작업차를 탄 채 전지가위를 한손에 들고 나뭇가지를 솎아내고 있었다.
과수원 바닥에는 전지가위에 잘려 나간 나뭇가지가 어느새 수북이 쌓였다.
오씨는 "가지치기하는 시기가 약간 늦었는데 얼른 끝내고 약도 쳐야 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날 하늘은 맑고 기온도 따스했다. 사과나무 가지에는 잎들이 하나둘씩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씨는 "올해는 일부러 가지를 덜 쳐내고 있다"며 "나무들이 아직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르니까 잎이랑 꽃 나는 걸 보면서 솎아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웃 주민도 과수원에서 살충제를 뿌리고 있었다. 살충제를 뿌리는 농기계에서는 멀리서 분무가 보였다.
오씨는 오전 작업을 마친 후 마을 곳곳에 있는 벌집들을 살펴보러 갔다.
혹여나 꽃가루를 나르는 벌들이 많이 사라졌을까 하는 걱정이 묻어나 보였다.
오씨는 과수원 뒤편 도랑을 찾아 벌집에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다행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나무 밑동의 큰 구멍에 있는 벌집에는 벌들이 보였다. 주위 도랑은 검게 그을렸고 큰 나무도 불길에 쓰러졌지만, 벌집은 남아 있었다.
그는 "내가 관리하던 벌통 5개는 다 타버렸다"며 "여기 나무 밑동에 있는 자연 벌집은 남아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난리 통에도 어디서 찾았는지 벌들이 꽃가루를 묻혀오는 걸 보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배방리 주민들은 이날부터 속속 돌아오고 있었다.
집이 전소된 주민들은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빈집들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해당 집 주인들이 주민들의 요청에 사용해도 된다며 내줬다고 한다.
임시거처를 마련한 송모(55)씨는 "집주인이 와서 문을 열어주고 갔다"며 "어제 이불이랑 식기를 급하게 사서 들여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삽이랑 흙도 샀는데 얼른 과수원에 나가서 작업하려고 한다"고 했다.
타지역 주민들의 온정이 전해지기도 했다.
전날 경남의 한 어린이집에서 학부모 등이 마음을 모아 마련한 각종 생필품을 직접 전달했다고 한다.
오병철씨는 "산불로 마을에 있는 집과 과수원이 피해를 많이 봤다"며 "생각지도 못한 도움에 힘이 난다"고 웃었다.
hs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