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자 만난 허주은 "힘든 세상, 연대하기 위해 글 쓰죠"

연합뉴스 2025-04-01 00:00:28

에드거상 받은 한국계 캐나다 작가…"모든 작품에 디아스포라 정서 투영"

조선시대 배경 범죄소설 호평…데뷔작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국내 출간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작가 허주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제 모든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이 세상이 어둡고 삶이 힘들지만, 우리는 이웃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범죄소설을 펴내 주목받은 한국계 캐나다 작가 허주은(36·June Hur)이 처음으로 국내 독자들과 만나 작품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9일 시공사가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다.

행사가 끝난 직후 서울 종로구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허주은은 "글쓰기는 저와 제 이야기, 컴퓨터뿐인 아주 외로운 작업인데, 제 작품을 즐겨준 한국 독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큰 격려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30여명의 국내외 독자가 참석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허주은이 두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세 살 때부터 캐나다에서 성장하고 이후 작가로 데뷔한 과정을 소개하고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자리였다.

허주은은 "오늘 행사에서 '책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길 바라느냐'는 한 독자의 질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저의 외로운 10대 시절에 책이 친구가 돼 줬듯이 제 책도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길 바란다"며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나 연대하기 위해서이고, 그래서 그 독자의 질문이 와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작가 허주은

역사와 문학을 전공한 허주은은 영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내려 했으나 출판사에서 수도 없이 거절당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배경으로 책을 쓰려고 자료를 찾던 중 한무숙의 역사소설 '만남'에 매료되며 모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장편소설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원제 'The Silence of Bones')으로 2021년 데뷔했고, '사라진 소녀들의 숲'('The Forest of Stolen Girls'), '붉은 궁'('The Red Palace'), '늑대 사이의 학'('A Crane Among Wolves') 등을 연달아 펴냈다.

네 장편소설 모두 미국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에드거상(Edgar Awards) 최우수청소년 부문 후보에 올랐고, 이 중 '붉은 궁'은 2023년 상을 받았다.

이 작품들은 모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범죄소설이다. 정조, 연산군, 영조 등 실제 존재했던 구체적인 역사 시대를 배경으로 가상의 사건을 다룬다.

허주은은 "서구에서는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가 인기 있는 장르"라며 "탐정 이야기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작가 허주은

그의 소설들은 가부장적이고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여성인 주인공이 사회적인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의문의 사건들을 해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허주은은 주요 인물을 이렇게 설정하는 이유를 페미니즘과 디아스포라(이산) 정서에서 찾았다.

그는 "과거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이 집에 머물며 아이들을 키우고 좋은 아내가 돼야 한다는 유교적인 장벽이 있었다"며 "만약 제가 그 시대의 여성인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위해 의문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 소설들의 주인공은 정조나 사도세자처럼 역사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고 평범한 소녀들"이라며 "마치 멀리서 열쇠 구멍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정서, 즉 디아스포라의 정서가 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역사는 저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제가 감히 다룰 수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런 감정이 제 모든 책에 담겨 있죠. 이민자 이야기를 쓴 건 아니지만, 제 모든 책은 디아스포라 소설입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작가 허주은

데뷔작인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데 대한 작가의 소감도 들을 수 있었다.

허주은은 "데뷔작이 비교적 늦게 번역 출간됐다"며 "제가 작가로서 성장하고 많은 것을 배운 뒤 펴낸 최근의 책들이 이미 소개되고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데뷔작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주실지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기분"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은 1800년 정조가 죽은 직후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다모 '설'이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렸다. 신인 작가의 첫 작품임에도 에드거상 최우수청소년 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받았다. 허주은의 작품을 번역해온 유혜인이 이번에도 번역을 맡아 최근 창비교육에서 출간됐다.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