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충격에 소화 안 돼 며칠째 식사 못 하기도
"대피소에 마련된 임시 한방진료소에 70∼80대 방문 줄이어"
(안동=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경북 북부 5개 시·군에 번진 산불은 진화됐지만 6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인 이재민들의 힘든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30일 찾은 경북 안동 길안중 체육관.
91살인 김모 할머니가 임시텐트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체육관 바닥의 냉기를 막아주는 건 그가 깔고 앉은 은색 단열재 하나.
아쉬운 대로 전기장판을 마련했지만 고령에 체육관 생활은 쉽지 않다.
김 할머니는 1934년 태어난 뒤 안동시 길안면 대곡2리에서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이번 산불로 반세기를 살아온 집을 잃어버렸다.
10년을 함께해온 반려견도 미처 풀어주지 못해 곁을 떠났다. 불이 꺼진 뒤 집을 찾아가 묻어줬다.
김 할머니는 정신적 충격이 컸던 탓인지 소화가 잘 안돼 대피소에서 며칠간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그의 왼쪽 이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고 한쪽 어깨는 불편한 듯 움직이지 못했다.
산불이 집을 덮쳤던 당시 급히 불을 끄려다가 창틀에 이마와 어깨를 부딪쳤다.
김 할머니는 제대로 걷지 못한다.
체육관 정문에서 열걸음이면 닿는 간이화장실은 멀게만 느껴진다.
화장실을 가려면 가족이 함께 부축해 휠체어를 타야 한다.
김 할머니는 이날도 딸과 손녀가 태워준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의 딸은 먼 길을 다녀온 천 할머니의 다리를 임시텐트에서 연신 주물렀다.
김 할머니는 "집이랑 사과나무가 탔고 농기계 다섯 대도 폭삭 내려앉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앞으로 임시주택에서 최소 1년은 살아야 한다는 소식에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경북도한의사회에 따르면 의성·청송·영덕·안동 대피소에 설치된 임시 한방진료소 8곳에 전날까지 나흘간 230명의 환자가 찾아왔다.
이들은 대부분 70∼80대의 고령이다.
김봉현 경북한의사회 회장은 "진료소를 찾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근골격계질환 등 지병이 있으신 분들"이라며 "심리적인 충격까지 겹치니까 소화 불량 등의 증세도 함께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리적인 의료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hs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