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작품 세계 조망 '환상에 대한 환상' 내일 개막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그림과 신앙은 병약한 나의 삶을 지탱하는 두 축입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성당의 종지기로 살아온 시간이 45년이 되어가는데 어제 처음 종을 치는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서귀포성당의 종지기인 고영우(83) 화백은 "신앙인이자 예술가로서 구원을 향한 희망과 허무라는 극단적인 두 가지 사고가 나를 지배해온 것 같다"며 이같이 말한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존재는 문제다'라는 실존주의 사상이 깊이 빠져 있었다고 회상한다.
대학 시절 카뮈와 사르트르의 철학서들을 탐독했다는 그는 "제 작품의 본질은 고립된 인간의 내적 고통"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작품의 주된 대상은 '인간'이다. '잃어버린 이름', '흔들리는 존재', '너의 어두움', '환상적 우울', '기억 속에서' 등 주요 작품의 제목들에서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고영우의 45년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전시회 'Layers of Fantasy-환상에 대한 환상'이 제주돌문화공원 내 갤러리 누보에서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1970년대 커피를 재료로 그린 작품,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몰두한 크레파스 작품과 드로잉, 2000년대 이후 유화로 그린 모노톤의 인물 군상 시리즈 등 50여점이 걸린다.
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크레파스 작품 대부분은 10명이 넘는 소장자들의 허락을 받아 전시하게 됐다.
고 화백은 1943년 제주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오현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다니다 1970년 심각한 공황장애로 중퇴했다.
1972년 제주 송미전시실에서 첫 개인전을 하고 나서 1994년 갤러리시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했다. 2002년 제비울미술관, 2015년 제주도문예회관에 이어 2018년 기당미술관에서 '너의 어두움'이라는 개인전을 했다.
프랑스미술협회 '프랑스 파리 아트 초대전'(1983), Asia 현대미술전(1985·도쿄), 한·중 현대미술초대전(1995·베이징), 유럽 ART 2003 국제 현대미술 아트페어(제네바), 현대미술 100인전(2005·파리), 제1회 워싱턴 국제아트페어(2007·워싱턴) 등 13회의 해외 초대전에도 참여했다.
고 화백은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세례를 받았고, 10년 뒤인 40세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서귀포성당의 종을 치고 있다.
그의 지병은 지금도 그의 생활반경을 집 주변 몇 ㎞ 내로 묶어 놓는다. 집을 떠나 제주시로 와본 지 60년이 됐다고 한다.
그는 2017년부터 서귀포시에 있는 기당미술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송정희 누보 대표는 31일 "고영우 작품 소장자들과의 대화하는 시간과 전시해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며 "고영우 작가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kh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