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혁 국민연금공단 기획 상임이사 "인상해도 4050이 보험료 더 부담"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오랫동안 묵혀뒀던 숙제를 끝낸 심정입니다. 늘 마음속에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는데 이제야 홀가분하네요."
국민연금공단 장재혁 기획 상임이사가 '2030을 위한 연금개혁 보고서'(보민출판사)란 책을 냈다.
책은 국민연금 등 다양한 연금 제도의 기본 원리와 활용법을 설명하고, 국민연금 개혁의 주요 쟁점과 그간의 논의 과정을 분석하며, 미래세대까지 고려한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 구축을 위한 현실적인 개혁 방안을 제시한다고 장 이사는 소개했다.
장 이사는 1991년 4월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해 보건복지부 요양보험제도과장, 연금정책과장, 건강보험정책국장, 연금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며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쌓았다.
복지부에서 초임 사무관 시절부터 시작해 과장, 국장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모두 연금 관련 부서에서 일하며 국민연금 제도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키운 보기 드문 '연금 통(通)'이다.
2022년 12월에 30년 넘게 몸담았던 공직의 옷을 벗은 뒤 2023년 1월부터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까지도 연금정책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책 출간을 계기로 장 이사를 인터뷰했다.
-- 책을 쓴 동기는.
▲ 국민연금의 중요성에 비해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자료가 부족해 안타깝게 생각했다. 복지부 재직 시절부터 느껴온 '빚'을 갚는 심정으로 책을 쓰게 됐다.
-- 젊은 세대를 위한 연금 개혁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 미래세대인 젊은 층에 연금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현재의 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개혁에 참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 '지속 가능한 연금'을 만드는 것이 연금 개혁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는데.
▲ 지속 가능한 연금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미래 세대에게도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고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개혁이 필요하다.
-- 국민연금의 장점은.
▲ 국민연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노후 대비 수단이다. 37년간 연평균 6%가 넘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장기 저축으로 인한 복리 효과는 개인연금 상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노후 현금 흐름을 보장하고 물가 상승기 실질 가치를 유지해 준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을 회사가 부담해주기에 개인 부담이 적다. 이런 강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 책에서 보험료 인상의 시급성을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 언젠가 누군가는 더 부담해야 하는데, 보험료 인상을 미룰수록 2030 등 미래세대는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현재 보험료 인상에 가장 반대하는 세대가 2030세대인데,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한다. 보험료 인상을 계속 반대하는 것은 결국 4050세대가 국민연금 납부 의무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과 같다. 이는 2030세대가 4050세대가 납부해야 할 몫까지 떠안거나, 자신들의 자녀 세대에게 다시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와 다를 바 없다.
-- 국민연금 개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논 제로섬 게임'이라고 강조하며 특히 보험료 인상이 2030세대에게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 한 부분도 흥미롭다.
▲ 많은 분이 연금 개혁을 '더 내거나 덜 받는' 제로섬 게임으로 여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수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적절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기금 운용 수익을 극대화한다면, 미래세대는 물론 현재 세대와 노년 세대까지 모두가 더 많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즉 연금 개혁은 파이를 키워서 모두에게 더 많은 몫을 나눠주는 논 제로섬 게임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보험료 인상이 납부 기간이 많이 남은 2030세대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혜택이 될 수 있다. 첫째, 4050세대 등 중장년층 인구가 2030세대보다 많고 소득 수준도 높아서 같은 보험료율로 인상하더라도 4050세대가 훨씬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 현재 연금 보험료 총액의 약 65% 정도를 4050세대가 부담하고 있다. 둘째, 4050세대와 2030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를 재원으로 국민연금공단은 국내외 투자를 통해 보험료 수입의 두 배에 이르는 수익금을 창출한다. 셋째, 4050세대가 보험료를 더 낸다고 해서 연금 급여를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연금 급여 수준은 보험료와 상관없이 소득대체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4050세대가 더 내는 보험료 수입과 증가한 수익금은 그대로 적립 기금에 쌓이게 되고, 이는 결국 2030세대에게 이전되는 혜택으로 돌아간다.
-- 독일과 캐나다의 연금 개혁 사례를 소개한 것도 인상 깊었다. 교훈은 무엇인가. 특히 책에서 모수 개혁만으로는 기금고갈을 막을 수 없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을 반박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 독일은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연장하는 등 '고통'이 수반되는 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노인 빈곤율 증가라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 캐나다는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기금 운용 혁신으로 수익률을 높이고, 이를 토대로 수급액을 늘리는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에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보험료율을 아무리 올려도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악화로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없는 등 국민연금 개혁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에서 밝혔듯이 현재의 인구 위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50년 후에는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 즉 인구 위기는 207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고 2080년 이후 안정화되며 약 80년 후인 2105년경에는 연금 수급자와 보험료 납부자 수가 비슷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2105년까지만 기금 고갈을 늦추면 된다. 이번 국민연금 개혁에서 1차로 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한 후, 10년 뒤인 2035년경 2차로 15%까지 인상하면 기금 고갈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이상은 올리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약 50년의 '재정 절벽' 기간을 넘어서면 상황은 나아질 수 있는데, 이 정도 기간이라면 극단적인 '구조개혁'보다는 현실적인 '모수 개혁'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한국 역시 캐나다의 모델을 참고해 국민에게 '고통'이 아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 국민연금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제도다. 더는 연금 개혁을 미룰 수 없다. 특히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가 연금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지금이 바로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