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에 산림 생태계 황폐화…산사태·홍수까지
대형 산불시 생태계 완전 복원에 100년 이상 걸려
우리나라 산불은 대부분 인재…함부로 소각해선 안돼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최근 경북 지역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자 막대한 인명, 재산 피해와 더불어 산림 생태계 복원이 가능할지도 주목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산불 관련 뉴스 댓글에는 최근 대형 산불과 관련해 "인공위성에도 관측될 정도로 초대형 산불이 났다", "이렇게 많은 숲이 타버리면 언제 다시 복원할 수 있겠냐?", "캘리포니아에서만 보던 대형 산불이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하다니" 등 망연자실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대형 산불로 폐허가 된 산림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100년 이상 걸린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데 정말 예전처럼 복원하는데 1세기나 걸리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양한 지리적 조건 등에 따른 각종 산불 유형 조사를 종합해 볼 때 대형 산불이 나면 장기적인 산림 생태계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극한 기후 사태가 빈발하는 최근에는 대형 산불 발생 시 산림 생태계가 구조적으로 회복되는 데 최소 30년 이상이 필요하며, 생태적 안정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이러한 연구들은 예전과 달리 이제는 기후 및 환경 변화 등으로 대형 산불 피해 지역의 회복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아 장기적인 관찰과 관리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 산불에 산림 생태계 황폐화…산사태·홍수까지
우선 우리나라의 산불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알아보는 게 필요하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건조한 날씨와 강한 계절풍의 영향으로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다.
산불이 발생한 경우 두꺼운 낙엽층 때문에 산불이 크게 번질 수 있으며, 험악한 산악지형 때문에 산불 진화도 매우 어렵다.
특히, 초봄의 건조한 시기에 대형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산불은 습도가 낮은 계절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습도가 높은 반면 봄(3~5월)과 늦가을(11~12월)에는 매우 낮기 때문이다.
봄과 늦가을에는 고기압과 대륙풍의 영향으로 비가 거의 오지 않으며 건조한 바람이 분다. 이 때문에 숲속의 습도를 낮춰 땅 위에 쌓인 낙엽이나 죽은 가지가 바짝 마르고 나무마저 수분이 적어 작은 불씨에도 산불 발생 위험이 커진다.
우리나라의 대형 산불은 2000년 강릉, 동해, 삼척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대표적으로 역대 가장 큰 피해 면적을 기록했다. 산불로 인한 피해만 2만3천794ha 규모로 축구장 3만5천개의 면적과 주택 등 800여 채의 건물이 불탔고 경제적으로는 360억원의 피해를 봤다.
2005년 양양 산불 때는 천년고찰 낙산사가 불탔다. 이는 산불이 산림과 주택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까지 불태울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줬다. 2013년에는 인구가 밀집해 있는 포항과 울주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32건의 대형 산불로 3만5천357ha 규모의 산림 피해가 났다.
2022년에는 총 11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그해 3월에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은 1만6천302ha의 산림을 소실시켰으며 진화 소요 시간은 213시간 43분으로 역대 최장이었다. 6천482명의 주민이 대피했으며 시설물 643개소가 소실되는 등 8천811억원의 경제적 피해를 야기했다.
2023년에는 대형 산불 8건이 발생하면서 3천769ha의 산림 피해를 보았다.
산불이 산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국립산림과학원에 의하면 산불이 나면 산림 생태계가 급속하게 황폐해진다. 도시가 인간의 주거 공간이라면 산림은 동식물 서식처로 산불은 이들의 서식처를 순식간에 파괴한다.
가장 먼저 생물다양성이 줄어들고 토양의 영양물질도 불에 타면서 산림의 생산력도 떨어진다. 토양을 보호하는 나무와 낙엽 등이 불에 타 사라지면서 비가 조금만 와도 토사가 유출돼 산사태·홍수와 같은 2차 피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소나무류 산불 피해목은 소나무재선충 매개충의 서식 및 산란처로도 기능해 소나무재선충병의 피해를 확산시킬 수 있다. 실제 산불 피해 후 2년간 솔수염하늘소의 밀도는 산불 미피해지역 대비 10~14배 이상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 대형 산불시 생태계 완전 복원에 100년 이상 걸려
그렇다면 대형 산불로 인한 산림 생태계를 원상 복구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기간이 필요할까.
산불 피해 면적이 100ha 이상이거나 24시간 넘게 꺼지지 않았던 대형 산불의 경우 산림 복원에만 최소 30년이 걸리며, 생태계 복원까지는 무려 100년 이상이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
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토사유출은 산불 발생 후 2년까지 심했고 이후 급격히 줄어 3∼5년 후에는 산불 발생 이전과 유사했다.
하지만 산림 생태계는 분류군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달랐다. 산불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어류는 3년 이상 지나야 개체 수가 안정화되며, 개미류는 14년 후에야 원상 복구됐다. 포유류나 조류 등 산림 동물이나 임상, 토양 등은 20년이 지나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산불 발생 후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산림 동물은 자연 복원지에서 83%, 조림 복구지에서 50%의 회복 수준을 보였고, 수목의 생장과 외형적인 모습은 70~80%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렇게 회복 시간이 다른 이유는 회복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나무가 산불 이전과 유사한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많은 세월이 필요하며, 산림 동물은 일단 숲이 산불 이전과 유사하게 회복된 후에야 정착이 가능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걸린다.
산림토양은 토양이 오랜 기간에 걸쳐 숲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토양 동물과 미생물의 활동을 통해 형성됐기 때문에 훨씬 긴 기간이 소요된다. 황폐해진 산불 피해지가 산림의 형태를 갖추는 데만 30년 이상, 생태적 안정 단계에 이르기까지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은 예상했다.
인도네시아의 '열대 습지림의 장기 회복 연구'에 의하면 16년간의 추적 관찰에서 산불 피해 지역은 비개척 수종의 경우 12년간 재생되지 않았으며, 종 다양성 회복은 수십 년에서 수 세기가 소요될 것으로 예측됐다. 인위적 화재 증가로 인해 최근 1000년 전 화재에 비해 복원력이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러시아 삼림 복원 기간 보고서(FAO)'는 산불 유형과 기후 조건에 따라 5~7년에서 100~150년의 복구 기간이 소요된다고 명시했다. 극심한 화재 발생 시 활엽수림이 침엽수림으로 대체되는 등 생태계 변질이 발생할 경우 최장 150년까지 복원이 지연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북미 서부 지역 기후변화 영향 연구'는 1981~2000년과 비교해 2050년까지 산불이 발생할 경우 재생 가능 지역이 기존 95%에서 75%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스프링 네이처에 실린 '화재 후 복구의 역동성과 회복력' 논문은 지중해 지역의 생태계가 산불로 인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프랑스 남부 지중해형 생태계를 조건으로 대형 화재 후 시간적 회복 패턴을 분석해보니 토양 품질이 90%까지 회복하는데 최대 87년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했다.
'가뭄 및 화재 사건 후 아마존 산림 복구 시간에 대한 모델 기반 추정' 논문을 보면 아마존 전역의 화재, 벌목 등의 영향을 받은 산림의 회복 시간은 가뭄의 경우 27년, 소각 지역은 44년, 벌목 및 연소 지역은 63년, 화재 강도가 높은 지역은 최대 184년에 달했다.
◇ 산불 피해지에 조림 등 복원 노력…소나무 생존율 높아
산불 피해지 복원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1996년 강원도 고성 산불 이후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복원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1997년에 153ha의 장기 연구지를 설치해 연구하고 있다.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삼척 지역에 4천ha를 연구대상지로 추가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강릉, 고성, 동해, 삼척 등 산불피해지에 조림된 수종들의 1년 후 생존율은 소나무가 평균 89%, 활엽수가 평균 53%로 소나무의 조림 복원 효과가 매우 우수했다. 소나무의 높은 생존율은 산불피해지와 같은 척박한 토양에서 소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불 발생 20년 후의 숲과 토양의 회복력은 강원도 고성 산불피해지의 관찰 결과, 숲의 회복은 조림 복원지, 토양의 회복은 자연 복원지가 효과적이었다. 토양의 경우 조림 복원지와 자연 복원지 모두 산불 발생 후 2~3년이 지나면서 유기물과 양분이 서서히 증가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에도 조림 복원지는 미피해지역에 비해 유기물은 32%, 양분은 47%, 자연 복원지는 각각 47%와 63%로 낮았다.
산림과학원은 산불 후 숲과 토양의 회복은 복원 방법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복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조림 복원과 자연 복원의 장단점을 고려해 입지의 특성에 따라 복원 방법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끼를 활용한 산림 복구 방법도 주목받고 있다. 이끼는 토양의 수분을 유지하고 다른 식물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태적 역할을 한다.
정부와 연구 기관은 산불 피해지 복원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각 사례에 맞는 복원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재해 복구 관리의 자동화 시스템 도입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규모 산불 이후 생태계 회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복구 작업이 연례적으로 이뤄지며 생태계의 복원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적용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2019~2020년의 대형 산불 이후 생태계 복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지역의 생태계가 어떻게 회복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향후 복원 계획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 산불은 대부분 인재…함부로 소각해선 안돼
산불이 난 뒤 복원보다 중요한 게 사전 예방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불은 대부분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벼락과 같은 자연적인 산불은 드물다.
관행적으로 하는 쓰레기 소각이나 농산부산물 소각 등은 모두 불법이며 자칫 방심하면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
소각할 때는 언제든지 쉽게 불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건조한 대기와 강풍이 부는 날씨라면 통제를 벗어나 산불로 이어지게 되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특히, 산에 갈 때 인화물질은 절대 가져가서는 안 되며, 담뱃불 등 작은 불씨라도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산행이나 등산할 때는 허가된 등산로를 이용하고 입산이 통제된 구역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취사나 야영, 모닥불을 피우면 안 되고 등산 중에 담배를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려서도 안 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 예측분석센터에서는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은 습도와 바람, 기온 등 기상 실황 및 예보자료와 함께 지형, 임상도 등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해 산불위험지수를 분석하고 산불위험 예측정보를 제공한다.
산불위험지수는 1에서 100까지 숫자로 나타나며 숫자가 높을수록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통해 '전국 시군구 상세 산불위험정보'와 '대형 산불 위험 예보제'를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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