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이 재탄생시킨 바흐 변주곡…변주 끝에 도달한 환희

연합뉴스 2025-03-31 02:00:02

옥타브에 변화 주고 묻힌 선율 부각…이하느리 작곡가 신작도 연주

통영음악제 리사이틀서 기립박수…티켓은 58초만에 매진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통영=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변주한 끝에 도달한 곳은 환희였다.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연주자 임윤찬이 30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연주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이하느리 작곡가의 신작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였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임윤찬이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꾸준히 연주 의지를 표명한 곡이다. 두 개의 아리아 사이에 30개의 변주곡이 있는 형태로서, 3곡씩 10개 그룹으로 구성되는 등 기하학적인 구도가 인상적이다. 도돌이표, 곡과 곡 사이의 두는 시간 등으로 피아니스트마다 연주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 연주자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는 곡이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이날 임윤찬이 선보인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임윤찬만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임윤찬은 여러 가지 변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멀어졌다. 7번 변주곡에서 멜로디를 반복할 때 옥타브를 올리고 18번에서는 내리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아울러 세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다른 선율을 부각해 여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는 묻혀 있던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웠다. 23번 변주곡 등에서는 놀라운 속도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임윤찬은 한 번의 아리아와 24번의 변주 끝에 25번 변주곡에 도달했다.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머리를 넘기고 숨을 한참 골랐다. 아다지오(느린 속도로 연주)가 붙은 단조에서 임윤찬은 느리고 깊게 관객을 끌어내렸다. 연주를 시작하기만 하면 그의 눈을 가리던 앞머리가 이제는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중간중간 선보이는 강한 타건(打鍵)은 관객을 슬픔의 수렁으로 더욱 빠뜨렸다. 임윤찬은 곡을 마치고 손을 천천히 떼면서 그 여운을 오래 남겼다.

이후 시작된 26번의 변주곡. 미소를 짓게 만드는 연주가 시작되고 임윤찬은 27번, 28번, 29번까지 마치 한 개의 곡인 양 쉴 틈 없이 내달렸다. 두 손을 교차하는 기교 속에서 에너지는 넘쳤고 분위기가 밝아지며 절정으로 향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도달한 30번에서 임윤찬은 고음의 환희를 들려줬다. 슬픔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단숨에 내달려 도달한 곳은 눈물을 자아낼 정도의 기쁨이었다. 임윤찬의 타건은 그렇게 관객의 마음을 때렸다.

임윤찬은 변주를 마치고 다시 돌아온 아리아(아리아 디 카포)에서 전에 없이 차분하게 곡을 마무리 지었다. 마치 긴 여행을 다녀온 듯한 연주였다.

관객의 기립박수에 그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의 32마디 베이스를 앙코르곡으로 화답했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그는 이 곡에 앞서 이하느리 작곡가의 신작 '…라운드 앤드 벨버티-스무드 블렌드…'(…Round and velvety-smooth blend…)도 연주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이하느리는 지난해 11월 버르토크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한 2006년생 젊은 작곡가다. 임윤찬이 직접 이하느리에게 이 곡을 위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젊은 음악가가 선보일 신곡에 관심이 모였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임윤찬은 고음으로 곡의 시작을 알렸다.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과 고음들은 마치 사그락거리는 얼음을 떠올리게 했다. 이하느리가 작품의 이미지에 관해 "얼음을 넣어 드시길 권장합니다. 얼음을 사용하실 경우에는 천천히 녹는 큰 얼음 조각을 사용하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설명한 대목을 연상시켰다.

임윤찬은 신작 연주를 마치고 객석에 앉아 있던 이하느리를 불러냈다. 임윤찬의 갑작스러운 손짓에 객석에 앉아 있던 이하느리 작곡가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하느리의 어깨를 툭 치는 임윤찬의 모습은 친한 친구를 만난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음악제 전부터 초미의 관심이었다. 그의 공연은 예매가 열리자마자 58초 만에 매진됐다. 이날 공연 시작 전에도 '리사이틀 티켓을 구한다'는 피켓을 든 관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공연장 밖 로비에서는 영상과 소리만으로도 그의 연주를 보려는 관객들이 가득했다.

encounter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