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필자가 베이징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때인 2023년 봄 중국 정부는 반간첩법(방첩법)을 대폭 강화했다.
당시 주중한국대사관은 유학생 등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법률상 기밀의 범위가 '국가 안보 이익과 관련된 문건'까지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으니 중국 자료를 상시 검색하는 학생, 연구자들은 각별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미중경쟁 심화 속에 미국과 그 동맹들이 자국을 포위·견제한다는 의식이 중국 정부를 사로잡고 있었고 한중관계도 가라앉아있던 그때, 베이징 교민사회에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난 2025년, 자유의 공기가 지배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필자는 가자전쟁 반대 집회에 참석했던 컬럼비아대 한국인 학생 정모(21)씨가 추방 위기에 놓여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6일자 기사에서 국무부가 '친(親)하마스'로 보이는 학생들의 비자 취소를 위해 AI(인공지능)를 사용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의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AI로 검열해 문제 학생을 찾아낸다는 취지인데, 이미 취소된 비자가 300건을 넘겼다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지난 27일 밝혔다.
비자나 영주권 취소 대상이 된 학생들에게 테러 단체 지원과 같은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다면 그들은 우선 법 집행 당국의 수사를 받았을 것이다.
정씨를 포함해 추방 위기에 놓인 것으로 최근 보도된 몇몇 대학내 친팔레스타인 시위 참가자에게서 그런 증거가 포착됐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 걸 보니 추방 대상으로 분류된 이들 중 상당수는 '사상범 용의자'가 아닐까 싶다.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는 트럼프 진영의 문제 제기 속에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자체 검열 시스템도 폐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학생들이 과거 SNS에 올린 가자전쟁 관련 글로 인해 추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낯설게 느껴진다.
작년 7월 피격 직후 단상 아래로 숨겼던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파이트'(Fight·싸우자)를 3차례 외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째 나라 안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세력과 싸우고 있고, 둘째 외국과는 관세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셋째로 그는 헌법과 그에 바탕한 기존 제도, 무형의 관습과 싸우며 삼권분립 하의 견제와 균형이 치열한 미국에서 자기 권한의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테스트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잇단 법정 공방 속에서도 연일 논쟁적인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정책에 제동을 건 판사에 대해 '좌표'를 찍고, 탄핵을 거론하는 것을 보면 행정, 입법부 장악에 이어 사법부까지도 굴복시킨 채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 세력'이 그리는 새로운 미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중국 이야기로 시작한 글을 중국과 연결해서 맺고 싶다.
트럼프 임기 중 미중 전략경쟁은 이념과 소프트 파워 경쟁의 요소가 크게 희석되는 새로운 양상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개방과 포용, 자유의 기풍으로 세계의 인재를 빨아들이던 미국, 자유와 민주주의를 앞세워 동맹국들과 겹겹의 대(對)중국 견제망을 짜던 미국의 벽을 체감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달라진 미국'이 주는 자신감은 '관세 스트레스'를 족히 상쇄할만하지 않을까 한다.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