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이념 제거" 행정명령에 "다양성 파괴", "재정 통제 의도" 반발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미국 진보 진영을 상대로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최대의 문화 기관으로 명성 높은 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협회를 겨냥해 '반미 이념'을 제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두고 비판과 함께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DC의 대표 공연장인 케네디 센터의 이사장을 직접 맡는 데 이어 스미소니언 협회 활동까지 손댄 것은 미 역사상 전례가 없는 행위로, 스미소니언 협회 전·현직 이사들과 민주당 의원들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스미소니언 협회 이사회에 속한 캐서린 코르테즈 마스토(네바다·민주)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직격했다.
마스토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를 다시 쓰려는 시도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를 삭감하고 관세를 이용해 중산층 미국인의 비용을 인상하려는 그의 재앙적인 계획에서 주의를 돌리려는 허약하고 비참한 시도"라고 주장했다.
스미소니언 협회 이사를 지낸 패트릭 J. 리히(버몬트·민주) 전 상원의원은 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이렇게 강하고 다양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히 전 의원은 "이처럼 단기간에 이토록 파괴적인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명한 행정명령은 스미소니언 박물관·미술관, 국립동물원에서 '부적절한 이념'을 삭제하도록 하고, JD 밴스 부통령이 협회 이사회에 참여해 이를 감독하도록 했다.
밴스 부통령이 미 의회 및 관리·예산국과 협력해 "공유된 미국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인종을 근거로 미국인을 분열시키는" 전시회나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 지원을 보류할 것을 지시했다.
영국인 과학자 제임스 스미소니언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미 의회가 설립한 스미소니언 협회는 워싱턴DC 일대에서 박물관 및 미술관 21곳, 교육·연구센터 14곳, 국립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WP는 이번 행정명령이 스미소니언 협회의 재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스미소니언 협회 예산의 60%는 의회 예산과 연방 보조금, 계약 등으로 채워진다.
갑작스러운 행정명령으로 협회 안팎에선 분노와 함께 불확실성에 따른 당혹감이 확산했다.
로니 G. 번치 Ⅲ 사무국장은 이메일을 보내 "모든 미국인에게 역사, 과학, 교육, 연구, 예술을 제공한다는 우리의 사명은 변함없다"며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협회 대변인은 미 여성 박물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여성 스포츠에 참여하는 남성 운동선수들의 업적'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거나 계획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관람객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미국 예술 미술관에서 만난 줄리 프록터(65)씨는 "이건 우리의 역사이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온 그는 "승자가 역사를 다시 쓸 수 없다"며 "하지만 지금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행한 켄 프록터(70)씨도 "원한다면 미화할 수는 있지만, 팩트는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이라며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민들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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