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 김윤기 평전…'나는 스물여섯, 덕진양행 노조위원장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 고등학생운동사 = 김소연·전성원·김대현·정경화·김성윤·이형신·안수찬·양민주·권정기·김영희·조한진희·전누리 지음.
1980∼1990년대 국내에서 벌어진 고등학생 운동, 이른바 '고운'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조명하는 책이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을 하고 이후 제도 권력을 구축한 현재의 60대, 즉 86세대와 달리 고운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나마 기억하는 이들도 1989년 출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지원하고 지지한 고교생들이라고 단편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책은 고등학생 운동에 몸담았던 11명의 기억을 토대로 고운의 다양한 층위와 당시 10대들이 지녔던 문제의식 등을 2025년의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들은 촌지와 학생에 대한 폭력이 난무하는 학교 문화에 분노해 인권과 상식을 지키고 싶어 했으며, 사학 재단의 비리에 저항하고자 했다. 1980년대 초부터 이어진 군사 정권 타도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품고 운동에 참여한 고교생도 있었다. 혹자는 전태일 열사의 묘소에 가서 노동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공장에 투신하기도 했다.
책은 당시의 고운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탄압과 교육정책의 변동 속에서 소모임이나 점조직 형태로 수면 아래서 맥을 이어가던 10대들의 운동이 6월 항쟁 전후의 변곡점을 계기로 표면화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고등학생이 사회 운동의 중심이 된 역사는 과거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광주 지역의 학생들이 주도한 광주학생운동은 3·1 운동이 이후 최대의 대일 민족 항쟁으로 전개됐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이 주도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고교생들의 시위는 김주열(1944∼1960)이 최루탄을 맞고 숨지면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책은 고교생들의 사회 운동이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사회가 10대를 정치적인 주체로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동녘. 516쪽.
▲ 나는 스물여섯, 덕진양행 노조위원장입니다 = 김윤기기념사업회 기획. 이계형 지음.
경기 성남시의 소규모 봉제공장 덕진양행 초대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사측의 노조 탄압에 항거하며 분신으로 생을 마감한 노동운동가 김윤기(1964∼1989)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지인들이 제공한 일화, 신문 기사, 민주화운동 사료, 국민대 학보 등을 토대로 고인이 직접 서술하는 일인칭 시점으로 김윤기의 생애를 재구성했다.
책은 박정희 정권 시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고 1983년 국민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김윤기가 1969년 삼선개헌 반대투쟁 이후 학생 운동을 주도했던 선배들이 중심이 돼 만든 서클인 '청문회'에 들어가며 운동가가 된 과정 등을 보여준다.
그는 1986년 인천 5·3 민주항쟁을 비롯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소요죄 등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의 판결을 받고 복역한 뒤 출소해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책은 젊은이들이 학생운동 이력을 감추고 이른바 위장취업 방식으로 공장에 들어가 노조를 결성하던 당시 상황과 가혹한 업무 환경을 바꾸고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분투하던 이들의 고민을 함께 소개한다.
소설가 공지영은 이 책의 '여는 글'에서 자신이 20대 초 운동권 그룹에게 집을 내주고 문간방에서 생활하던 시절 김윤기가 같은 집에 머물렀다고 회고하고서 고인이 "죽어서 더 살아나는 인물"이라고 평한다.
"누가 그 젊은이에게 목숨을 걸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찾지 못할 거라고 가르쳤을까.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아팠을까."
휴머니스트. 400쪽.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