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늘리기 위해 집수리비 최대 500만원 지자체 부담
임차인은 저렴한 가격에 거주, 임대인은 세입자 찾아 '상생'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썩기 마련이다.
옛 어르신들은 사람이 내쉬는 숨에 집도 함께 숨을 쉰다고 말했다.
이들의 표현대로라면 최근 부산에는 죽어가는 집이 늘고 있다.
최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빈집 수는 11만4천245호로 7대 특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대책 없이 늘어나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의 한 지자체가 나섰다.
지자체가 공인중개사를 위촉하고, 집수리비를 지원함으로써 빈집에 다시 사람을 불러들이겠다는 계획이다.
◇ '새집'처럼 변한 '빈집'…세입자도 임대인도 "만족"
부산 중구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 1층.
장판과 도배는 물론 창틀까지 새로 맞춰 깔끔해 보이는 모습.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빈집이었다고 믿기 어려웠다.
훈기로 데워진 집은 아직 이삿짐을 풀지 않아 채 정리되지 않은 짐과 기본적인 살림살이로 채워져 있었다.
지난달 50대 A씨는 부산 북구에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직장과 가까우면서도 가성비 좋은 집을 찾던 중 공인중개사에게 '빈집 뱅크'라는 사업을 소개받았다.
원래라면 시세에 따라 보증금 1천만원에 매달 월세 25만원을 내야 하는 집이다.
그런데 구청에서 1년 동안 집이 비어있었다는 이유로 집수리를 해준다는 데다가 월세도 보증금 500만원에 23만원으로 깎아준다니 계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A씨와 임대인은 구청에서 집수리비 500만원을 지원받아 거실과 방 1개, 화장실 1개 등을 새로 꾸몄다.
A씨는 "집을 수리해준다는 전제로 집 계약을 했다가 집주인이 돌연 약속을 어기는 경우도 종종 봤다"며 "그런데 이곳은 구청에서 지정한 공인중개사가 중개하는 것은 물론 구청에서 집수리비를 지원해준다고 하니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이어 "한동안 비어있던 집이라고 하지만 도배 등 수리를 해놓고 보니 새집같이 말끔해 살기 좋다"며 "계약은 2년 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중구에서 살고 싶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애가 탔던 임대인도 한숨 돌렸다.
해당 다세대 주택을 소유한 지 20년가량이 넘은 허주석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입지가 좋아 집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고 세입자를 쉽게 찾았다"며 "최근에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 인구 감소를 절감하던 차였다"고 말했다.
이어 "구청에서 중개 역할을 해주다 보니 임차인과 임대인이 신뢰를 가지고 거래를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도입 한 달 만에 성과…"지역 경제 활성화도"
전국적으로 저출생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부산은 타지로 인구가 유출되는 상황까지 겹쳐 인구 감소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 가운데 부산의 옛 도심인 중구는 산복도로 곳곳을 따라 600가구 정도의 빈집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구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빈집 임대차 중개 지원 정책 '빈집 뱅크'를 추진했다.
빈집의 주인이 매물 중개를 요청하면, 지자체가 공실 기간 1년과 용도 확인 등 심사를 거쳐 구청 홈페이지 내 개설된 사이트에 매물을 올린다.
이후 임차인과 임대인이 계약을 맺은 뒤 집수리계획서 등을 지자체에 제출하면 협약이 체결되는 식이다.
임대차 계약 기간은 1년 이상이며, 임차인의 중개비는 지자체가 부담한다.
임차인은 중구 관외에 전입자나 기존 중구 주민일 경우 임대차 계약일 기준 4년 이내 중구로 전입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중구 관계자는 "중구에 거주하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임차인은 관외 전입자를 중심으로 선정했다"며 "임차인이 원하는 부분에 대해 집수리가 진행되며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한다"고 말했다.
사업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올해 1월 첫 운영을 시작한 뒤 한 달 만에 거래가 성사되더니 현재 5건의 계약을 마쳤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매물은 30여건이며, 지자체의 심사를 기다리는 매물도 60여건에 이른다.
빈집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은 지역 경제 활성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박창흥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산지부 중구지회장은 "과거 중구는 유동 인구는 물론 주거 인구도 많아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는데 인구가 유출되면서 부동산 경기도 침체했다"며 "중구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일대 상권이 되살아나는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psj1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