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노트] 왜 지배구조 개선인가

연합뉴스 2025-03-29 01:00:02

코스피

상장사들의 주주 친화적이지 못한 지배구조는 만성화된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불러온 원인으로 거론된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는 주장은 아니다.

최근에는 상법 개정을 매개로 논쟁이 벌어진다. 이사(director)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올해 3월 13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찬반 논란은 더 뜨거워졌다.

상법 개정 논란은 다양한 층위에서 전개된다. 법학자들은 법리 논쟁을 벌이고, 지배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와 소액주주운동을 벌여온 단체는 대립각을 세운다.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가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다.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에 내재된 단기주의를 경계하는 시각이다. 상장돼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회사의 주주는 자주 바뀐다.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외 증시를 막론하고 투자자들의 주식 보유 기간이 과거보다 짧아졌다. 반면 기업 활동은 본질적으로 영구적이다. 애널리스트들도 '계속기업'(going concern)을 전제로 기업 가치를 평가한다.

상법 개정 반대론자들은 단기 편향적 이해관계를 갖기 쉬운 주주들에게 기업이 휘둘릴 경우 대규모 투자 등 긴 호흡에서 이뤄져야 할 의사결정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주 자본주의에 내재된 단기 편향은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포인트다. 다만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결정은 대체로 경로 의존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어떤 결정이 이뤄지는 데는 역사적 연원이 있게 마련이다.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의 강조는 기업의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이 충분히 배려받지 못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보다 정확히는 기업의 의사결정이 소수 지배주주 편향적으로 이뤄지면서 다수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문제의식이다.

실제로 관계사 간 M&A(인수·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 결정, 물적분할 후 동시 상장, 알짜기업의 헐값 공개매수와 상장폐지 등에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본 사례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이 빈번하다 보니 상법 개정이 부각되는 것이다. 상법 개정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만들어진 문제가 아니다.

상법 개정에 반대하면서 내놓는 반론들도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을 하다 보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잘못된 주장이다.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회삿돈을 이용해 자사주 매입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옳지 않다.

'경영권을 옥죄는 환경에서 어떤 기업이 한국 증시에 상장하려 하겠는가?'라는 주장도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상장(go public)은 기업이 투자자에게 베푸는 일방적 시혜가 아니다. 주주들도 투자 수익을 남기고자 하는 이기적 동기로 상장기업에 자금을 공급하지만 기업도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신규 주식을 발행하면서 주식시장에 상장한다. 상장의 본질은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투자자들을 모으는 행위다.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 과정

주주들로부터 공급받은 자금은 공돈이 아니다.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 증시에서 시행되는 '주가와 자본비용을 의식한 경영실천 방안 권고'를 본떠 만들었다. 자본비용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이 치러야 할 비용이다. 타인자본비용은 차입이나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에 수반되는 코스트인데, 이는 '이자율'이라는 객관적 값으로 계측할 수 있다.

주주로부터 조달한 자금에 치러야 할 자기자본비용은 매우 주관적인 값이지만 기업은 늘 이를 의식한 경영을 해야 한다. 자기자본비용은 기업 입장에서 비용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기대수익률이다. 당연히 자기자본비용이 타인자본비용보다 높다.

투자자 입장에선 채권으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면 주식보다 선순위 청구권을 갖게 된다. 주식이 채권보다 더 위험한 이유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 때문에 채권보다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비용을 의식'해야 한다는 도쿄증권거래소의 권고는 상장사가 주주들에게 공급받은 돈이 공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법 개정 등을 통한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단기주의에 경도된 주주들의 요구와 이에 따른 장기적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본질적으로는 옳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말의 부작용도 배제한 무균실에서의 자연과학 실험과 같을 수는 없다. 다수 주주의 요구로 장기적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배주주, 소위 오너라고 늘 옳은 결정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재벌기업들이 무리한 M&A 등으로 자멸한 사례는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결과론으로만 평가하면 100%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다만 상장사로서 자신에게 자금을 공급해준 주주들을 존중하면서 의사결정을 하자는 주장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건 너무도 실망스러운 일이다.

다소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불균형을 시정해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배주주 편향적 의사결정은 경험칙에 근거한 실재이고, 주주권 과잉에 따른 부작용은 가상의 걱정이다. 과문한 탓인지 한국 증시에서 주주권 과잉으로 인한 폐해가 단 한 가지라도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