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김영구씨, 30년간 모아…1660년 '산학계몽' 목판본부터 1980년 정석 수학까지
(의령=연합뉴스) 정종호 기자 = 경남 의령군은 세계수학의 날이었던 지난 14일 지역 주민인 김영구(66) 씨가 그동안 모은 수학책을 군에 공개했다고 28일 밝혔다.
현재 군 가례면 자굴산 기슭에서 매실 농장을 운영하는 김씨는 30년 동안 수학 교과서 수집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 창원시 마산지역에서 오랫동안 학원 수학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김씨는 수학책에 매료돼 본격적인 수집 활동을 시작했다. 의령에 정착한 건 2014년 무렵이다.
김씨는 자신의 농장 내 수집한 수학책을 모아 전시한 공간을 '수학교과서연구소'로 지칭하며 자신은 소장을 자처했다.
이번에 그가 공개한 수학책은 약 3천권이다.
조선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를 망라한다.
중국 원나라 수학자 주세걸이 1299년에 쓴 수학책 '산학계몽'의 1660년 목판본과 조선시대 최초로 서양 수학을 다룬 책인 '주서관견(1705)' 필사본, 조선시대 널리 사용된 수학책 '수리정온(1723)' 등이 그가 모은 대표적인 수학고서 들이다.
김씨가 모은 수학책에는 우리 아픈 역사도 엿볼 수 있다.
미군정 시절에 문교부가 펴낸 수학 교과서인 '초등 셈본'에는 '호열자'(콜레라)가 퍼져 1946년 10월 28일 기준 전국에 1만5천641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1만1천118명이 사망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1944년에 발행한 '초등과 산수'에는 육군소년지원병 지원 자격과 체격 조건 등이 서술된 구절이 있다.
이외에도 1955년에 컬러(천연색) 인쇄된 첫 수학 교과서 '산수'와 1971년 표준전과, 1980년 정석 예비고사 수학 등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친근한 수학책도 즐비하다.
김씨는 의령군과 관련된 수학책도 이번에 공개했다.
그는 헤이그 특사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친동생 이상익 선생이 쓴 수학책 '신식 산술교과서(1908)'를 꺼내면서 이 선생이 의령이 고향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의 중동학교 재학시절 수학 스승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김씨는 "학술 연구와 학생 교육을 위해서 한국 수학 교과서박물관과 같은 시설이 건립돼야 한다"며 "자신이 모은 수학책을 연구하려면 역사·문학·일본학 등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고 수십 명의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청 등 교육 관련 공공기관이 수학 교과서에 관심을 두고 미래 세대를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jjh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