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산불 상시·대형·장기화…반짝 관심 '이젠 그만'
막대한 피해 규모 고려하면 장비·기술 첨단화가 경제적
(안동=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해 1주일 동안 경북 북부지역을 초토화한 산불이 28일 주불 진화로 사실상 끝이 났다.
사망자 24명, 이재민 수천명 등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았다.
산불영향면적만 4만5천여㏊로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불과 3년 전인 2022년 3월 경북 울진 산불로 인한 트라우마가 좀처럼 극복되지 않은 가운데 이같은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이제는 정말 진화대책이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기후 변화로 기온 상승…산불 위험 점점 커져
이번 의성 산불은 입산자 실화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드러났지만 근본적으로는 봄철 고온, 건조한 대기, 강한 바람, 적은 강수량 등 기후 변화가 촉발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산불 발생일인 지난 22일 의성지역은 25도를 넘는 초여름 날씨를 보였고 지난달(2월) 강수량은 4.8㎜로 평년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인 것으로 기후 변화에 따라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가 건조해지고 바람이 강해져 산불 발생이 점점 빈번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 소나무 천국…활엽수 전환 서둘러야
우리나라 산림 면적 중 소나무 숲이 대략 3분의 1에 달한다.
특히 경북은 산림면적이 약 130만ha로 우리나라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림의 40% 이상이 화재 확산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림이다.
소나무는 송진이 불에 잘 붙고 오래 가는 특성이 있어 화재에 취약하기 그지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2022년 3월 울진 산불에 이어 이번 의성 산불 등 역대 최대급 산불이 발생한 곳이 경북지역이란 점이 이를 증명한다.
울진 산불 당시에도 소나무보다 상대적으로 불에 강한 활엽수 중심의 '내화수림대'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수종 전환 작업은 더딘 상황이다.
◇ 고질적인 장비·인력 부족…비상시에만 '반짝' 관심
이번 의성 산불이 초대형급으로 커지면서 산림청과 소방청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헬기를 투입하는 등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강풍과 짙은 연기로 좀처럼 불길을 잡는 데 애를 먹었고 안타까운 헬기 추락 사고까지 발생했다.
헬기는 산불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번처럼 의성 외에 경남 산청, 울산 울주 등 전국적으로 동시다발로 산불이 발생하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연구과 연구사는 "산불 진화의 핵심은 헬기인데 하루에 여러 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상황에서 헬기가 부족하다 보니 진화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경북도가 보유한 19대의 헬기 중 대형 헬기는 한 대도 없고 5대는 소형, 14대는 중형이다.
19대 중에서도 13대는 생산된지 30년이 넘은 오래된 기종이다.
진화 인력 또한 소방청이 경북에서 62명으로 구성된 전문 조직(119산불특수대응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장비나 체력 조건에서 열악한 산불진화대원들을 대거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등 고질적인 전문 인력 부족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2022년 울진 산불 당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산불 진화 장비와 인력 보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특히 야간에 기동할 수 있는 헬기 등 첨단 장비 도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밤 시간에 바람이 비교적 잦아들면서 불의 기세를 잡을 수 있는 시간대라는 점에서 시급히 필요한 장비지만 비상시에만 '반짝' 관심을 받을 뿐 이내 논의가 흐지부지됐다. 의성 산불을 계기로 이번에도 경북도가 산불 대응시스템을 대전환하겠다는 각오를 밝혀 주목된다.
도는 야간, 비가시권 운영 금지 등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산불 진화에 특화한 대형 첨단 장비 확보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드론, 무인 진화 로봇 등 첨단 장비를 갖추고 정부와 손잡고 산불 전용 대형 소방 장비 개발에도 나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 천문학적 피해 고려하면 예산 투입이 경제적
산림당국은 올해 담수용량 1만ℓ짜리 대형 헬기 1대를 계약하고, 내년에도 수리온 헬기 3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는 한 때 500억원을 들여 1만리터 이상 담수량을 가진 항속거리 900㎞ 이상 초대형 소방헬기를 도입할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헬기 보유를 늘리는 데는 예산상 한계가 있다는 게 산림당국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의성 산불영향면적만 4만5천여㏊에 달해 재산 및 공익적 가치의 피해 규모가 최소 1조원 수 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하면 첨단 장비 확보에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산불로 인한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재발 방지를 한목소리로 외치지만 이내 관심이 줄어든다"며 "이번과 같은 대형 재난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과감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