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에게 프리다이빙은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섰던 일'로 기억된다.
실패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문제 앞에 다시 서는 일. 또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부터 앞선다.
일어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실패로 인한 손해를 책임져야 한다. 거기다 실패라는 낙인까지 달아야 한다.
적어도 말귀를 알아듣는다면, 같은 실수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우리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모두에게 실패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하고 싶은 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 비교당하는 성공 속에서, 세상은 삭막해지고, 지름길을 배우기도 바쁘다. 실패할 용기는 점점 찾기 힘든 것이 되어가고 있다.
"살아오면서 모든 면에서 삶이 순조롭게 풀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운 일을 찾아 도전해 보고 싶어 프리다이빙 강사 과정을 지원하게 됐습니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하는 모든 활동을 뜻하는 '프리다이빙' 강사 과정에 참여해 만난 강습 동기 태웅의 말이다. 그가 멋져 보였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단절시킨 4년 전 여름의 일이다.
마스크를 끼고, 뛰어들어야 했던 제주 바다에서 태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는 어려운 과정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과정을 이수하며 절절매는 내게도 많은 팁을 알려줬다.
과연 프리다이빙 강사 과정은 내게도 살아오면서 해본 일 중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물속에서 내 몸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해 여름은 실수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수심' 과정이었다. 제주 바다의 수려한 아름다움은 수심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반대급부였지만…
수심 40m!
땅에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숨을 쉬지 않고 뛰어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물속 40m 깊이에 숨을 쉬지 않고 내려가는 것은 쉽지 않다. 압축되지 않는 물의 특성 때문에 물속에서는 공기의 압력(부피)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수심이 10m 깊어지면 기체의 압력은 2배, 3배로 높아지고 공기 부피는 1/2, 1/3로 줄어든다. 30m 깊이에서 이미 폐는 1/4 크기로 줄어들고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 상태가 된다.
40m가 되면 물속의 압력은 물 밖의 5배가 된다.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 주먹만 해진 폐를 보호하기 위해 혈액이 폐를 감싸고, 비장의 무기인 비장이 활성화돼 보조배터리처럼 작용하며 생존을 돕는다.
모든 포유류는 물속에서 잠수 반사 반응이 자연적으로 촉발돼 생존 스위치가 켜지지만, 인간은 기술을 익히고 연습하지 않으면 물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바로 인간의 얼굴에 있는 다양한 기관 때문이다. 얼굴에서 '굴'(窟)은 비어 있는 공간, 동굴의 굴과 같은 뜻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부비강, 부비동이라고 하는 빈 공기 공간과 가장 얇은 유스타키오관이 모두 하나의 굴로 연결돼있다.
그 공간의 부피가 압력 변화로 줄어들 때 아픔을 느낀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 귀가 먹먹해지는 그 느낌, 물속에서는 훨씬 압력의 변화가 크다.
압력 변화 속에서 얼굴 속에 압력 평형을 해결하지 못하면 아파서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다. 강인한 정신력이 아니라 유려한 기술이 필요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모든 근육은 필요한 만큼 연습을 통해 기능 향상이 이뤄진다. 그것도 다소 더디게 진행된다.
그중에서도 압력 평형, 얼굴 안의 압력을 다루는 기술은 근육을 쓰는 것에서 나아가서 신경계를 끄고 켤 줄 알아야 한다.
압력 평형의 세계는 생체역학과 생리학적 측면으로 보면 모든 면에서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내려갈 때는 머리가 아래로 있는 자세이고, 물리적으로 공기는 위로 뜨려고 한다. 얼굴과 폐 사이의 통로인 기관의 문인 성문(聲門)이 열리게 되면 얼굴 안의 공기를 잃게 된다.
성문은 목소리 낼 때만 열렸다가 닫히는데, 성문을 닫으려고 힘을 주게 되면 오히려 열리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락함과 편안함을 유지해야 성문이 닫혀 얼굴에 공기가 남게 된다.
그러한 상태에서 얼굴 안에 초과압력을 주는 압력 평형을 하기 위해서는 압력 평형에 필요한 힘을 제외한 모든 얼굴 근육의 힘을 빼야 한다.
다른 곳에 힘이 들어가 있거나, 압력 평형에 필요 이상의 의식을 두면 편도체가 활성화돼 얼굴의 혈류가 증가해 압력 평형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필요한 만큼 압력 평형을 해야 하는데, 지나치면 이후 압력 평형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저런 문제로 압력 평형이 되지 않는 실패 수심에 도달하게 되면 누구나 아파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실패 수심의 깊이는 날마다, 컨디션마다 다르며, 그 상황에서는 세계 챔피언도 해결할 수 없다. 유일한 선택지는 물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같은 장소와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몇 번이고 잘하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실패한 그 지점 앞에 다시 서야 하는 순간은 반복된다.
내 몸을 다루는 일 하나 마음대로 못 하면서 어찌 큰 꿈을 이루겠는가.
그런데 돌이켜 보니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실수한 지점으로 돌아가 문제 앞에 다시 서는 일, 내 삶에 그런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토록 여러 번 포기하면서도, 다시 도전했던 일이 있었던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면 할수록 이토록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가?
실수하고 실패해도 한계에 부딪혀 강제로 멈춰졌다. 다시금 자신을 다독이고, 돌아봤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다시 용기를 내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일!
빠른 길이 정답인 것처럼 넓은 세상을 배웠지만, 느리고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홀로 찾아가는 과정이 '프리다이빙'이었다.
물속에서 마주하는 나 자신은 생각보다 나약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게 됐다.
계속 실수하고 실패해서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물속에서 스스로를 구해 씩씩하게 돌아왔지 않는가.
프리다이빙에서는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일상이다. 노력이 있기에 돌아온 곳의 숨이 달다. 실패한 그 지점에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왔다.
실패한 그 지점에 다시 서는 일, 프리다이빙에서는 일상이다. 그 또한 내 삶이다.
이번 여름에도 나는 다시 프리다이빙에 도전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실패를 통해 더욱 강해진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놀라운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김정욱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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